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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시인·목사
작성 : 2022년 04월 14일(목) 16:40 가+가-
한덕수(73세) 전 국무총리가 윤석열 정부를 이끌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그는 5명의 대통령을 섬겼고(박정희부터 박근혜대통령까지) 유일하게 문재인 정부에서만 관직을 맡지 못했다.
그를 가까이서 보아 온 한지인은 그를 흡사 카멜레온에 비유할 수 있는 변실술의 귀재로 직무능력을 수행하는 실력이야 이미 인정을 받았지만 사람 냄새는 전혀나지 않는, 그래서 인격면에서는 0점을 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요약해보면 그는 오직 출세만을 위해 고향을 숨기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 무려 6차례나 요직을 맡은 끝에 국무총리까지 지냈으나 장례식에 조문조차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다른 무엇도 보지 않고 능력만을 보겠다는 윤석열 정부에 다시 발탁 그 탁월한 능력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궁금해진다.
능력이 바로 쓰면 국가와 국민에게 덕이 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발휘되면 돌이킬 수 없는 폐해를 낳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카멜레온, 한덕수 총리지명자, 과연 윤당선이 주장하는 공정과 상식에 부합하는 인물일까?
왜 그사람이어야 했나? 오직 유일하게 문재인 정부에서만 요직을 맞지 않은 것이 인상적이었을까?
아니면 최근 그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모양으로 윤당선인이 관심을 갖도록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과 원전폐기 정책에 어긋장을 놓는 논리가 눈에 들어서였을까?
무엇보다 따뜻한 정으로 국민을 품어 줄 도량 넓은 덕스러운 총리를 바랐는데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에 냉혈한 한덕수는 왠지 조화롭지가 못한 예감이다.
아니 찰떡궁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경기고, 서울상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경제학석박사, 8회 행시 최연소(21세)합격, 서울상대 수석졸업, 어디에 내어 놓아도 화려한 학력이다.
경제기획원상공부에서 사무관으로 출발. 1996년 김영삼 정부에서 특허청장으로 고위직에 오른뒤 통상산업부차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 본부장, OECD대사,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김대중정부) 산업연구원장, 총리실 국무조정실장,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 국무총리 권한대행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체결, 38대 국무총리(노무현정부) 주미대사, 한국무역협회장(이명박정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박근혜정부), 유일하게 문재인 정부에서만 기용되지 안항,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출발, 2017년 기후변화센터 이사장까지 40년간 국록을 받았다.
박정희부터 박근혜까지, 일제강점기 대문장가 애류 권덕규 선생은 <가명인두상일棒(假名人頭上一棒>이라는 동아일보기재 명문장으로 유명한 분이시다.
1920년대 동아일보 초대사장 박영효는 이분의 글을 실어 퇴임까지 이르렀었다.
당시 권덕규 선생의 논설이 문제가 된 것은 한족(중국)문화를 빛내는데 몰두하는 당시 주자학파 유학자들을 ‘지나(차이나) 사상의노예’라 통박하며 그들을 ‘가짜 명나라 사람들’이라 부른뒤 “그들의 머리에 몽둥이를 한방”이라고 저격하며 ‘아! 슬프고 원통하다’며 명나라에 기울어진 일부 유학자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되찾아 주체적인 학문을 하라는 꾸짖는 격문이었다.
한덕수와 같은 동향인 언론인으로 청와대 춘추관장과 한국방송공사 사장을 지낸 김기만씨는 한덕수 총리지명에 이를 바라보는 그의 소회를 밝혀 필자는 본글에 이를 인용하고자 한다.
그가 말하는 인간 한덕수에 대한 몇가지 추억을 통해 실력과 능력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는 전제하에 슬하에 자녀도 없이 ‘일이취미’라 할만큼 일중독인게 좋아 보이기도 하나 이 시대와 그 내면의 인간성이 과연 총리 적격자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추억의 대략은 이러하다. 초대 전북지사인 유종근은 전북경제 살리기가 절실한 터에 인맥을 찾아 당시 상공부 국장이던 한덕수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나는 전북출신이 아니니 절대 나를 찾아오지 말라”는 수모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했다.
YS정권말기 그를 잘 아는 전북 출신 기자들이 그가 특허청장이 되자 전북 출신으로 기사를 썼다. 그러나 그는 해당 언론사에 자신의 본적은 서울이니 앞으로 전북출신이라 말라고 했다.
그 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그는 초대통상교섭 본부장이 되었다.
언론사들은 1년 전 경험이 있어 그의 본적을 서울로 썼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는 전주가 고향이며 초등학교도 전주에서 다녔다’고 언론사들에 팩스를 보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님이 돌연 목숨을 끊었다.
이명박 정부시절 당시 주미대사에 부임 3개월째인 그는 서거후 29일 국장이 끝날때까지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에도 봉화마을을 찾은 적이 없다. 주요요직과 총리까지 그 밑에서 지낸 그가…이 정도면 카멜레온 냉혈한 한 덕수 실력자. 과연 공정과 상식에 맞는 인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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