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사람들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4월 10일(일) 17:13 가+가-

요즘 학교에서는 컴퓨터언어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방법을 가르친단다. 나 또한 컴퓨터언어 학습이 논리적 사고에 도움이 되리라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또한 어릴 때 이것 저것 다양한 경험을 통해 흥미와 적성을 탐색하는 활동은 아이들의 권리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입맛은 씁쓸하다.
어린 시절, 독서에 대한 여러 격언을 통해서 독서를 권장받았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거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이 거칠어진다(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며 말이다.
마침 내가 다녔던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도서실이 ‘도서관’이라 부를 정도로 규모가 크고 책이 다양했던 덕에 수도 없이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학창시절 내내 반 도서위원에서 도서관 도서위원, 학교 도서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으니 축복과도 같은 환경이었다.
나는 수많은 위인들의 제자였고, 작가와 작중인물의 토론상대, 관찰자, 주인공이 되었다. 때로는 미켈란젤로를 지켜보는 조르주였고 때로는 홈즈의 조수였고, 때로는 『태백산맥』에서 벌교의 비극을 지켜보는 관찰자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모교인 고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왔을 때,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국어과 교생으로 와서 고전문학 중 송강 정철과 「관동별곡」에 대해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직역한 관동별곡을 읽을 때 학생들이 전혀 이해하는 눈빛이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수업 진행을 잠시 멈추고 몇몇 단어와 표현들에 대해서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는데 온전히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매주 도서관에서 600권 가까이 대출과 반납이 이루어지는 독서지도가 활발한 학교임에도, 독후감 대회가 활발한 학교임에도 그러했다.
그래서 씁쓸한 것이다. 학창시절에도 그러했고, 교생 실습 때도 그러했고, 최근에도 학교는 학생이 무언가를 하게 하려고 한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2000년대 중반, 광주에는 십여 개의 고등학생 시문학 동아리가 있었다. 지금은 더 많다.
그러나, 선택의 기회를 주겠다며 학교마다 수십, 수백 개의 동아리를 만들어대니 자발성과 자율성, 흥미와 열정을 잃어버린 채 ‘탁상행정’의 부산물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제 광주에서는 여러 학교의 동아리 회원들이 모여서 자작시를 돌려 읽고 시화전을 기획해서 초대하질 않는다. 교생 실습에서 경험했던 고등학생들의 참담한 문해력은 역설적이게도 적극적인 ‘위로부터의 독서지도’의 탓이라는 의심을 수년째 하고 있다.
우리가 받아왔고, 알고 있는 교육의 모습은 ‘지도’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아이들을 ‘지도’의 대상으로 인지하고 있는 계몽주의 시절의 낡은 교육방식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딛고 올라갈 사다리를 잡고 지탱해주는 존재이다. 교사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사다리 밑에서 어서 올라가라며 엉덩이를 밀어대니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고 드라마를 즐기고 음악을 즐기는 것은 ‘재미’를 붙였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들, 선후배가 굳이 시간을 할애해서 시문학 동아리 활동을 한 것은 그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내 시간, 생각과 체력을 열정이라는 장작으로 불태울 수 있었다.
도돌이표처럼, 어릴 때 이것 저것 다양한 경험을 통해 흥미와 적성을 탐색하는 활동은 아이들의 권리라고도 생각한다. ‘재미’를 붙일 대상을 발견하는 축복을 경험하는 것은 정말 멋지고 신나니까 말이다. 책 한 권에 한 사람의 일생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재미를 붙일 대상을 발견한 아이의 책은 읽는 사람도 재미있을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어느 다독하는 교수가 ‘집에 책이 많은 이유는 읽기 때문이다’고 했다. 읽던 책에서 흥미가 가는 주제를 발견해서 책을 구입하는 행동을 반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육 또한 그러해야 한다.
재미를 붙인 대상에 몰두하다보면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고 다시 몰두하기를 반복하며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획득 난이도가 낮고 접근성 좋은 간접경험의 수단이어서이다. 다행히 나는 책으로 배가 부르다.
그렇지만, 출근길에 컨베이어 벨트 위의 공산품처럼 같은 옷을 입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지나치는 모교의 후배들을 볼 때마다 굶주린 것처럼 보여 안타까운 마음에 씁쓸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