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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비전, 현재
강나루 시인·시와사람 편집장
작성 : 2022년 03월 27일(일) 16:45 가+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예쁜 꽃이 그려진 색지를 나눠주며 꿈을 적고 꽃모양을 따라 오려서 제출하라고 하였다.
대통령을 쓴 친구도 있었고 국회의원, 의사, 변호사, 목사 등 선생님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 ‘꿈’이라는 것이 어제 자던 중 보고 들었던 무언가가 아니라 장래에 가지고 싶은 직업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맞춰서 쓴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려서부터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묻기만 하지, 어떻게 해야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지도는 없었던 것 같다. 그나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장래희망을 묻던 것을 고학년,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희망 중학교, 희망 고등학교와 내 성적에서 지원 가능한 계열에 대한 상담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장래희망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책을 무한히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원할 뿐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서점에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한권씩 집어들 때마다 신나고 책장에 다 읽은 책을 한권씩 꽃아넣을 때마다 만족스러웠다. 물론 불만과 후회가 가득했던 책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만족스러웠다. 그래서일까? 수능을 마치고 어디로 진학할 것인지를 상담할 때 중등학교 국어교사가 될 수 있는 사범대학으로 원서를 쓰겠다고 하였다. 대학 면접 때에도 왜 지원했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대한민국 누구나 알 수 있는 작가를 키워낼만한 교사가 되고 싶어서 왔다라고 하였다. 대단한 작가의 스승이 항상 대단한 작가는 아니었지만 글을 많이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인 것은 당연하니 그럴싸한 답변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왔을 즘부터는 ‘비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혹은 ‘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망’을 뜻하는 영어단어를 가져와 그대로 치환한 것이다.
요즘은 고유명사화되어 누구나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처음 들었던 새내기 때에는 매우 생소하고 어색한 느낌이었다. 나는 꿈과 장래희망을 가지고 국어교육과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며 너의 비전은 무엇이냐고 다그치니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 세상이 요구하는 것도 너무 많구나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 때 그 강사가 가지기를 요구했던 ‘비전’이 내게는 필요했던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나를 거울에 비춰보면 글을 비판적으로 쓸 줄 안다지만 빼어난 것이 아니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신중하게 판단한다지만 경험이 너무 적어 속도가 늦다. 그 탓에 이미 판이 벌어진 후에야 파악하고 뒤쫓기 일쑤였다.
대학에 들어가던 때 가졌던 장래희망도 너무나 멀어졌다. 공익근무를 하며 ‘신체장애로 학업을 이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언해를 가르칠 수 있으면 보람차겠다’고 생각했을 때 어떻게 하면 자격을 갖추고 일을 할 수 있을지 알아봤어야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변화 없는 챗바퀴같은 삶에도 지루해하지 않고 활동적이지 않지만 남 살피기를 좋아하니 공무원이 되면 그것 또한 보람찰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노력을 쏟아부어 일로정진했어야 했지만 혹시 다른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망상 해버릇한 것 또한 현재에 이른 크나큰 패착이다.
지금 와서 비전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진지하고 명확하게 비전을 밝혀봤어야 했다고 후회해봤자 속만 탈 뿐이다.
단지, 지금은 비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노력과 집중력만이 내 연료가 되어야한다고 깨달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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