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있는 정치인을 그리며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작성 : 2022년 02월 08일(화) 16:43 가+가-

학인(學人)은 좀 엉뚱한 구석이 있다. “우리는 ‘고독한 군중’의 한 사람이다. 10만분의 1의 장소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학인은 늘 화두를 던지고 나서야 설명해주는 버릇이 있다. 그것도 묻지 않으면 넘어가 버린다.
10만분의 1은 우리나라에 커피점이 10만 개(2021년 통계. 1인 소비량 512잔)가 있단다. 그중에 하나인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신다. ‘고독한 군중’은 1950년대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 1909~2002)의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의 저서를 말한다.
그 부제가 말하고 있듯이 ‘변하고 있는 미국의 성격연구’인 만큼 현대 미국인의 성격과 사회의식을 밝힌 저서다. 오늘날 이 책 제목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개인의 소외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이 되었다.
‘고독한 군중’은 현대의 고전, 명저가 되었다. 20세기 미국 사회학자가 남긴 업적 가운데 이만큼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도 드물 것이다.
이 책은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50년 초판이 나왔을 때 10만 부가 매진되었고, 1954년 보급판이 나오자 순식간에 50만 부가 모두 다 팔려 동이 났다. 당시, 대단한 파장의 저서다. ‘고독한 군중’은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일반독자들 사이에서도 이처럼 놀라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은 지금까지 기록이 없다.
학인은 지난주 대선 후보들의 토론을 말한다. 보수의 무기는 유능이다. 진보의 무기는 도덕성이다. 진보와 보수는 모두가 무기가 없는 빈손들로 비추어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에 “바른 정치인이 되려면 서생(공부하는 사람)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두 후보는 서생의 현실 감각에 상인의 문제의식을 지닌 듯했다.
하지만 신뢰는 턱도 없다. 얕은 지식을 그것도 페이퍼에 눈을 들이박고 만기친람(萬機親覽)하려는 후보의 모양새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프랑스 철학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 1753~1821)는 ‘국민은 그 수준에 걸맞은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책상에 놓인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물끄러미 보다가 펼친다. 2권에는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에게‘로 된 내용이다. 옥중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희호 여사가 보낸 편지다. 아내로서 남편에 대한 걱정, 아이들 자라는 이야기, 강아지의 재롱에 이른 집안의 향기가 그득한 내용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저서 중심은 국민을 신뢰하고 그 가능성을 믿는 이야기다. 역대 제국의 나라들에서 로마제국, 중국의 제국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반듯이 망한다는 사례가 김대중 대통령의 지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리스본이 말한 ‘고독한 군중’이 아닌가 싶다. 미디어 발달, 인터넷 스마트 폰의 발달 등이 고독한 군중을 만들어 간다. 어떤 방송의 프로그램이 방영된 다음 날은 세계인이 공동화제의 프로그램이 된다.
이 프로그램을 보지 못하면 당연히 소외된다. 대화 속에 속하지 못한 사람은 자연 소외가 된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줄어들고 방송사가 만든, 프로그램은 나 자신을 소외하게 만든다. 1950년대는 휴대폰도 없었다. 오늘처럼 사회의 흐름을 전하는 매체도 다양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은 오늘의 현실과 적중한다. 우리는 내부의 지향성이 부족함을 돌아보고 있다. 사지선다형 교육을 받은 60, 70대는 사고(思考)보다는 판단이 먼저다. 가짜정보에 자신의 판단은 없다. 왜곡된 가짜뉴스나 유튜버에 순응한다. 이것을 두고 학자들은 무서운 생각의 문맹이라 한다.
요즘 시대를 카페인 중독이라고 한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 등 이러한 미디어 수단을 통해 끓임 없이 자신을 알리고 평가받음으로 타인과 함께한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타인지향형은 내부지향보다 독립성이 부족하다. 대중매체와 접촉함으로써 타인과의 접촉을 통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에 고독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OECD 국가 중 노인(65세 이상) 자살률 1위가 되는 불명예를 가졌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군중 속의 고독’이라 했지만,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이라 했다. 리스먼이 말하는 ‘고독한 군중’은 다중의 고독을 말한다. 개인적인 고독은 그 사회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군중의 고독은 비창조적이며 우울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리스먼의 주장이다. 스마트 폰에 중독된 사회가 바로 고독한 군중을 일컫는다. 당장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부터 줄이는 것이 사색의 폭을 넓히는 일이지 않을까. 이것은 타인 지향적 삶에서 해방되는 길이며, 자살률 1위를 벗어나는 처방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