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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사슬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1년 06월 02일(수) 16:38 가+가-
태국에서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식이 있다.
숲속에서 몰이꾼들이 입구가 막힌 장소로 코끼리를 몰아 포로가 되게 한다. 힘세고 사나운 코끼리를 부려 먹을 수 없기때문에 코끼리 발목 한쪽을 쇠줄로 묶고 다른 한쪽은 아름드리나무에 묶어둔다.
그러면 코끼리는 힘을 써서 당겨보지만 나무는 움직이지 않고 코끼리 자신은 꼼짝도 하지 못한다. 그러기를 일주일 정도 계속하면 코끼리는 쇠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인지하게 되고 더이상은 힘을 쓰거나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고 포기하고 만다.
이때쯤이면 사냥꾼들은 코끼리가 덫에 걸렸음을 확신하고 서커스단이나 동물원에 팔게 된다. 이때 코끼리를 사간 사람들은 코끼리를 쇠줄에 그냥 묶어만 두면 된다. 왜냐하면 코끼리는 쇠줄이 나무에 묶여 있어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벗어나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한 코끼리가 벗어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도 이미 코끼리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포기하였기에 쇠줄에 영원히 매여 있는 것이다. 코끼리가 생각에 매여있지 쇠줄에 매여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까?
오늘날 사람들도 여러 가지에 시달리며 많은 생각의 사슬에 매여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그분께로 돌아올 해방과 자유의 큰길을 예비해 주셨다.
그 길을 아는 사람들은 코끼리처럼 평생 매여있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BC 1050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낸 후 1000년에 걸친 프로젝트가 성취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신을 섬기다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북의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멸망 당했고 남의 유다는 두 차례에 걸쳐 바벨론의 침입을 당한 끝에 가나안 땅에서 문화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멸망했다.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은 바벨론 성벽의 증설과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연결하는 운하 공사에 동원되어 강제 노역에 하루종일 시달렸다.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신을 섬긴 결과는 포로의 비참한 삶이었고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해가 지면 강변에서 목을 놓아 울었다.
하나님도 그들의 고난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셨는지 70년의 기한을 단축해주셨다. 유다의 포로가 처음 잡혀갔던 67년째 되는 해에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유다 포로들을 석방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했다.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고대사’에서 장차 고레스라는 왕이 유다 백성을 본토로 돌려보낼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읽고 감동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어쨌든 고국으로 돌아가는 유다 백성들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시 126:1∼2)
그들이 잡혀갈 때는 다메섹과 하맛을 거쳐 바벨론으로 끌려갔으나 돌아올 때에는 사막을 가로질러 곧바로 달려왔는데 이사야는 이미 160년 전에 그것을 예언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3)
고향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뜻하고, 본향은 ‘본디의 고향’ 혹은 ‘시조가 태어난 곳’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본향을 찾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는 인물들이 많다.
노아는 비록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했던 곳이지만,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완성했다.
결국 자신의 고향과 지인들은 심판을 받았지만, 노아의 가족들이 탄 방주는 홍수 속에서도 온전하게 구원을 받았다.
그것은 본향을 바라보는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다. 갈 바를 알지 못했고 안될 것같은 형편들이 있었지만 본향으로 향하는 길임을 믿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가능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죽음의 자리에 가기까지 고향을 떠나 순종의 명을 다했고 달음박질 후에도 버림받지 않기 위하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본향을 향하여 가는 발걸음을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형편을 향하여 올라오는 자기 생각을 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고, 하나님의 품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죄의 사슬을 십자가에서 풀어 놓으시고 본향을 향한 진리의 길을 열어놓으셨다. 이미 자유롭게 해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생 죄의 종으로 생각에 매여서 코끼리처럼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만 움직여보면 풀려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의 삶에서 돌려주셨듯이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풀어놓아 주신 믿음 안에서 소망과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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