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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감
김요한 시인·목사
작성 : 2020년 10월 15일(목) 16:33 가+가-
세상이 급속히 변해가니 옛적 사고로만 살 수 없게 됐다.
경상도 살골에서 손자를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운 할배와 할매의 이야기는 당연 격분할 일임에도 웃으면 공감 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씁쓸함은 결코 지울 수가 없다.
그래 세상 따라 나도 달라져야겠구나… 생각케 된다. 며느리가 아들을 연년생으로 출산하여 육아가 힘드니까 할매 할배가 큰 손자를 시골에 데려다가 초등학교까지 기워서 보냈다.
자식 키울 때는 몰랐던 짜릿한 사랑으로 그야말로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웠다.
명절에 만나면 넘 이뻐서 끌어 안고 뽀뽀를 하고 주머니 털어서 용돈 챙겨주시고 헤어질 땐 늘쌍 아쉬우며 눈시울까지 붉혔던 할배와 할매. 세월이 흘러갈수록 점점 만남의 횟수가 줄어 들었다.
손자 녀석 얼굴이 아련히 떠오를 때마다 전화라도 하면 며느리가 받아서 “아버님 영식이 학원 갔다 지금 와서 자고 있어요” “아버님 저 지금 바빠요. 다음에 전화 드릴께요” 하면서 쫓기듯 전화는 끊겼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손자 놈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할배는 너무 기뻐서 친구들한테 자랑을 하면서 막걸리 파티를 벌리는등 신이 났다.
그때 기분을 발이 땅에 닿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고령의 나이에 시력도 청력도 정상이 아닌데 경상도 끝자락에서 서울까지 혼자 나들이 하기가 부담이 된 할배는 서울 사는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야야! 요새 니가 보고싶다” 동생이 형님 목소리가 왠지 아련하여 차를 끌고 내려가서 삼일 동안 형님 내외를 모시고 함께 즐기다가 상경하려는데 형님 할배 왈 “ 야야 나도 서울 가고 싶다. 손자놈도 보고싶고”하시면서 울먹거린다.
그래서 동생을 형님과 함께 상경하여 다음날 형님 할배 아들집에 갔더니 손자 녀석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늦은 시간에 들어오면서 소파에 앉은 할배를 보는둥 마는둥 지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며느리가 민망한 듯 “야 영식아!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오셨는데 인사드려야지”
손자는 다시 나오더니 안녕하세요. 고개만 끄떡하고 다시 들어 간다. 그래서 이를 본 동생이 너무 속상하고 민망하기조차 하여, 또 할배형이 갑자기 불쌍해 보여 “야 영식아 할아버지가 너 보고 싶어서 멀리서 오셨는데 와서 껴안고 뽀뽀한 번 해드려야지”
큰소리로 외쳤더니 마지 못해 나와서 할아버지 옆에 멋쩍에 앉아서 티비만 보고 있다.
어색한 분위기에 저녁을 먹고 형님 할배를 두고 동생이 나오는데 형님 할배, “나도 같이 갈란다” 하시면서 따라 나오신다.
며느리는 안절부절 머뭇거리고 할배댜들이 “아부지! 오랜만에 머길 오셨는데 주무시고 쉬었다 가시지요” 형님 할배왈 “댓다마 들어가거라 나는 니 삼촌집에 가서 자고 갈끼다”
돌아오는 길에 조수석에 앉아서 창밖만 바라보시는 노 형님의 눈시울이 붉게 변한다.
동생아! 엄마 아부지 보고 싶다 하시면서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이 스토리는 실화입니다>라는 주석이 달렸다.
놀랄 것이 없는 우리가 사는 현실 앞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화를 내기에 앞서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세태에 그져 적응해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우리집도 이웃집도 이런 현상이 자연스러울테니 말이다. 그러나 어찌 이렇게 되었는지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아들과 며느리가 평소에 자신을 아들을 소중히 키워 준 할배와 할매에 대한 사랑이 그 서울대 들어간 아들에게 전해졌다면… 바랄 수는 없으나 자식보다 더는 못해도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자식에 버름가게 중하게 여겼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요즘 여러가정에 가정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제부모 소중함을 가르치지 않은 열매는 어떻게 맺을까? 결국 누워서 침뱉기인 것을 우리는 잊고 있지 않을까?
어느 교육학자는 짐승과 사람이 다른 것은 사람을 교육을 통해 새로운 인격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자녀가 소중하다면 가장 먼저 가르켜야 할 것은 예의범절일 것이다.
예의와 도덕이 상실된 자녀가 결코 훌륭한 인격체로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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