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기적과도 같은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한 장군은 더글라스 맥아더(Macarthur)장군이었다.
그가 남긴 어록중에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때 맥아더 장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고 낙동강 전선을 끝까지 지킨 주인공이 바로 초대 주한 미군사령관인 워커중장이다.
그는 1950년 12월 한국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아들 샘 워커대위가 전사를 하자 미국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게 되는 날 그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장군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급호텔중의 하나가 바로 ‘워커힐 호텔’이다.
워커힐(Walker Hill)은’워커장군의 언덕‘이란 뜻이다. 지난 1963년에 준공식을 가진 워커힐호텔 안에는 워커장군을 기리기 위한 비석도 세워져 있다.
이 호텔이 세워지게 된 배경은 1961년 5·16군사혁명 이후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약 100달러 수준이었다.
당시 멜로이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고민거리가 있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찾아가 의논을 했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약 3만 명의 미군들이 막상 휴가를 명령받아도 국내에 그들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나 공간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일본 도쿄로 가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불편함은 물론 막대한 외화가 한국에서 빠져나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은 곧 바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해결방안을 모색하던 끝에 한강이 아래로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아차산 일대를 미군의 전용 휴양처로 개발토록 허락을 받았다.
김종필 정보부장은 당시 최고의 건축가로 알려진 약관 30살의 젊은 건축가 김수근을 찾아가 이러한 계획을 알리고 이 일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김수근은 강명구(전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김희춘(전 서울대학교 공예학과 교수), 나상진, 엄덕문(전 엄이건축 대표), 이희태(전 엄이건축 대표)와 함께 참여해 마스터플랜은 강명구, 호텔은 김희춘, 민속관은 엄덕문이 각각 책임을 맡아 역사적인 작업에들어갔다.
당시 서울에는 유일하게 조선호텔 한 곳밖에 고급호텔이 없었다. 호텔 이름은 워커(Walton H. Walker)로 초대 주한유엔군 사령관의 이름을 따기로 했다.
그리고 두 번째 호텔이름은 55실 규모의 더글러스(Douglas)호텔로 김수근이 직접 설계를 했고 맥아더 장군의 이름을 (Douglas Macarther) 따왔다.
세 번째 호텔은 48실로 이름은 머슈르호텔로 명명했는데 워커의 후임으로 부임한 리지웨이 머슈르장군의 이름을 땄다. 네 번째 호텔은 45실 규모로 밴 플리트호텔이라 불렀다.
조종사 아들을 북한의 상공에서 잃은 밴 플리트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다섯 번째로는 라이먼호텔로 렘미치 라이먼장군의 이름을 따왔다.
그리고 지금도 워커힐 호텔 정문에 들어서면 워커 장군의 스펠링이 W로 시작하니까 역삼각형을 두 개 세운 글씨를 상징적으로 전망대를 만들었는데 힐탑 설계도 김수근이 직접 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인 건물에 요즘 국민들로부터 ‘과잉의전’의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북한의 고위급 인사의 방남비용 부담에 따른 논쟁이 뜨겁다. 삼지연 연주단을 이끌고 맨 먼저 남한을 방문한 북한의 현송월과 일행 8명은 강원도 강릉 스카이베이 경포호텔에서 1박2일 동안 머물면서 1인당 약 169만원의 경비로 전체 2,700만원을 썼고, 김여정과 일행 22명이 방남 하여 머물렀던 서울 광진구 워커 힐 호텔에서는 1인당 약 364만원씩을 써 2박3일 동안에 2억4천만 원의 경비를 우리나라 정부가 지불했다고 통일부에서 공식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2월25일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 북한의 김영철 일행 8명은 2박 3일 동안에 1인당 약 299만 원씩 총 7189만 원 정도의 경비를 써 전체 3억3887만 원을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에 특급호텔인 어찌 워커힐 호텔 한군데 밖에 없는가?
6·25한국전쟁의 생생한 역사가 그대로 숨 쉬고 있는 장소에 천안함 북침의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김영철 일행을 워커힐 호텔가운데서도 가장 상징적인 17층 전체를 전세 내어 그토록 깍듯하게 모셔야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땅에 와서 자유를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다 숨져간 참전 미군병사들의 혼과 넋이 살아있는 그 장소에서 우리의 주적들에게 두 발 쭉 뻗고 잠자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을 위한 ‘과잉의전’이 우리 국민들의 가슴을 얼마나 후벼 파는 일인지는 전혀 헤아리지 조차 못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묵살한 것인지? 알 수 없어 더욱 답답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