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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용장성 사찰명 기와 최초 확인
‘용장사’ 아닌 ‘금사사’ 추정… 삼별초에 축조되면서 재사용된 듯
작성 : 2014년 11월 25일(화) 17:15 가+가-
삼별초가 전남 진도에 왕궁지를 조성하기 위해 강제로 폐기한 사찰명이 ‘용장사’가 아닌 ‘금사사(金沙寺)일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명문기와가 발견돼 학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목포대박물관은 지난 8월 말부터 시작된 사적 제126호 용장성(龍藏城) 왕궁지의 6차 조사에서 건물지와 배수로, 축대, 아궁이, 궁장, 기와 유구 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궁장(宮墻/牆 궁궐을 둘러 싼 성벽)의 북벽 바깥쪽에서 확인된 명문기와는 왕궁이 들어선 장소가 ‘용장사’가 아닌 ‘금사사’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명문기와의 암키와 외면에 새겨진 여러 글자들은 ‘太平十年庚午四月..金沙寺..造印’로 판독됐다.
太平은 중국 요나라 성종(1021~1030)의 재위기간에 사용된 연호이며, ‘太平十年庚午’는 1030년(현종21)으로 해석되고 있다.
용장성 왕궁지는 출토유물로 볼때 9~10세기 무렵의 나말여초기에 창건돼 운영돼 온 산지가람을 강제로 폐기하고 폐기된 공간과 주변을 확장해 조성됐다.
폐기된 사찰의 존재는 조선후기에 편찬된 ‘沃州誌’(저자 김몽규, 1761년)에는 창건 당시의 사찰명이 용장사로 표기하고 있다. 반면 이번에 확인된 명문기와에는 그동안 왕궁터가 ‘용장사’로 당연시됐던 사찰명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물관 측은 사찰명이 새겨진 명문기와는 기존 사찰의 창건 또는 중창되는 시기에 제작됐다가 삼별초에 의해 왕궁지와 궁장이 축조되면서 재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발굴로 삼별초에 의해 강제로 폐기됐던 사찰의 성격을 재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晉陽付造月南社’는 용장성 왕궁지 조성 이전에 자리했던 사찰과 최씨 무인정권-강진 월남사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밝힐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어 향후 연구성과가 주목된다”고 밝혔다.
한편 박물관은 25일 오후 3시 발굴현장에서 학술자문회의 및 현장설명회를 가졌으며 왕궁지 3차조사(2010~2011)에서 출토된 청동합 2점을 공개했다.
이 유물은 정확한 판독은 다소 무리가 있지만 최씨 무인정권(晉陽府, 최씨 무인정권 2대 집정자 최우의 집을 뜻함)과 강진 월남사(月南社=月南寺), 그리고 왕궁지 조성 이전에 자리한 기존 사찰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한편 목포대박물관의 진도 용장성 왕궁지 발굴조사는 유적에 대한 정비·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1989년 시작돼 2014년까지 6차에 걸쳐 이뤄졌다.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완료된 17개 지구에서는 건물의 기능과 위계에 따라 배치된 60여동의 건물지와 관련 유구들이 확인돼 왕궁지로서의 위상과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또 건물의 배치구조, 건축 양식과 기법 등이 개성 만월대, 강화 고려궁지, 제주 항파두리성과 닮아 있어 이들 유적과의 직접적인 비교 연구와 고려시대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진도=이운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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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h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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