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위기와 동학(東學)의 지기일원론(至氣一元論)
김양용 철학박사
작성 : 2024년 11월 03일(일) 16:41 가+가-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와 착취의 근거로 지목되었던 성경의 ‘너희가 대지를 지배하라’(창세기, 1. 27)는 말씀은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옹호되었다. 그럼에도 린 화이트(Lynn White Jr, 1967)가 ‘인류가 당면한 생태위기의 근원에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과 인간 중심적인 자연관에 영향을 받은 서구의 근대과학에 있다’는 용기 있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가 말한 ‘자연 착취’와 ‘생태계의 무한성’은 근대적 세계관이었으며, 이에 대한 서구 언론과 사회적 비판은 필연적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해온 동양철학에 손을 내민다. 이는 서구의 자연관이 분석적이고 개념적인 이해에만 몰두했다는 자기반성이다.
서구인들이 말하는 대안적 사유는 주로 불교, 힌두이즘(Hinduism), 노장의 생태 사상이다. 하지만 동양 전통의 자연관이 동서의 보편적 사유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동양 전통사상 저변에 흐르는 생태적 세계관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유불선의 종합 위에 서양의 천주교를 아울렀던 ‘동학(東學)’의 생태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학은 19세기 서구의 과학 기술의 발전과 산업혁명에 대응할만한 동양사상의 한계, 근대 합리론과 자연과학의 발전에 기초한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떠안았다. 조선의 사상가 최제우(1824~1864)에 의해 창시된(1860년) 동학은 인류 보편의 독창적 사유 구조를 구축하려 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지기일원론(至氣一元論)이라는 생태적 세계관으로 집약된다. 생명력, 생명의 기운으로서 지기(至氣)는 자연, 인간, 신에 공통적으로 내재한 천주(天主)를 원리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은 신에게 가려진 개인을 분리하여 드러내었던 서구의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다. 구체적으로 지기(至氣)로서 ‘천주(天主)’와 ‘나’의 바람직한 모심(侍)의 관계는 ‘한울’의 보편적 이치와 합일되는 ‘내유신령(內有神靈)’과 모든 존재에 내재하는 ‘한울’이 현실화되는 ‘외유기회(外有氣化)’라는 두 가지 요체로 해석되고, 나아가 개인의 지적 탐구를 통해 모심의 원리를 터득하고 구현하는 ‘각지불이(各知不移)’로 인격화된다.
‘지기일원론’은 신, 인간(사회), 자연 등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이는 서구와 달리 자연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하고, 인간과 동등한 생명체로 존중해온 동양 전통의 일원론적이고 유기체적 자연관이다. 무엇보다 자연 그 자체가 질서를 가지며, 그 섭리에 따르는 인간의 순응을 강조한 도가와 달리 ‘자연의 섭리’를 인격적으로 해석하고, 자연의 질서와 창조적 인간의 특징을 동질화시킨 점이 독창적이다. 특히 이 ‘지기’가 모든 생명체로 발현되고, 각각의 생명체에 내재해 간섭함으로써 거시와 미시의 세계를 망라한 우주 전체의 조화와 진화 즉 만물과 우주의 공진화를 이룬다는 점은 현대물리학의 관점을 선취하고 있다. 이로서 ‘정신과 물질’의 이원적 세계가 생명이 실상에 통일되고, 자연 안에 가득한 의지적 존재로서 한울은 도가적 자연의 본질인 도(道)를 구체적인 에너지인 생명의 원리(‘지기’)가 명료하게 해면된다.
동학은 자연의 생성구조를 ‘내유신령(內有神靈)’과 ‘외유기화(外有氣化)’로 해석하고, 실질적 생명 작용의 법칙을 ‘이천 식천(以天食天)’, ‘이천봉천(以天奉天)’, ‘이천화천(以天化天)’의 논리로 풀어낸다. ‘내유신령과 외유기화’는 생명 안에 정신적 신령이 있고, 그것이 충만한 생명력으로 현실화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천식천, 이천봉천, 이천화천’은 물질적 에너지의 작용 법칙으로서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실상이다. 한울이 한울을 먹는데, 이것이 한울로서 한울을 섬기는 것이며, 끝내 한울로서 더 나은 한울을 진화시켜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서구의 이원론적이고 물질중심의 지배적 자연관를 넘어선다.
결국 동학의 생태적 세계관은 ‘사람이 사람을 공경하고, 만물을 공경하고, 그리고 하늘을 공경하라’(삼경)는 우주적 평등주의로 귀결된다. 먹힘으로써 살리고 희생함으로써 해방시키는 생의 원리로서의 경을 통해 사람과 만물, 그리고 하늘이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이 때문에 누구나 지적 탐구와 주문을 통해 시천주 즉 ‘내유신령과 외유기화’의 일원론적 우주적 평등원리를 터득하고 현실 속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결코 포기하지 말라(‘각지불이各知不移’)는 말이다.
19세기 조선의 사농공상의 엄격한 신분제 아래 생산을 담당했던 농민과 노비, 백정 등 천민 집단이 한울로 공경받는 세상을 꿈꾸었으니, 동학이야말로 과연 농민혁명을 추동할 만한 보편적 정언명령(定言命令)을 제시한 실천철학이자 종교사상임에 틀림없다. 무지몽매한 군주가 어떻게 백성을 절망의 도탄에 빠뜨리는가 하는 교훈은 19C 조선과 21C 오늘의 현실이 별반 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