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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속죄 구원과 불교 무아(無我) 해탈의 ‘비밀’
박성민 논설위원 편집국 국장 (진도 담당)
작성 : 2024년 10월 31일(목) 16:56 가+가-
기독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문맹(文盲)이라 할지라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용서함을 통한 구원을 받는다. 반면 불교의 해탈은 무아(無我)상태를 추구하는 정신 현상이기에 소수만이 수행에 참여해 깨달은 사람은 극소수로 알려졌다.
기독교의 구원과 불교의 해탈은 무엇으로부터 구원이며, 해탈일까? 양측 모두 내면을 들여다 보면 구원과 해탈은 인간의 죄성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을 알게 된다.
기독교와 불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죄악의 처리 방법이다. 기독교는 창조주가 직접 육신을 입고 세상에 와서 죄를 해결했다. 불교는 개인의 수행을 통해서 처리하려 한다. 양측 모두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죄로부터, 욕망으로부터 자유함이나 최종 결과는 극과 극의 큰 차이가 난다.
기독교 구원은 죄로부터 구원이다. 그래서 구원을 속죄함 즉 죄 용서함이라 한다. 기독교 구원은 영혼 구원이며 육신의 구원은 예수 재림때 이뤄진다. 영혼 구원이란 영과 혼과 몸으로 이뤄진 인간은 죽으면 실제 ‘나’의 실체인 영혼이 몸과 분리되는데 그 영혼이 진짜 ‘나’다.
3500년전 욥기에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는 기록이 우리 시대 뇌과학과 첨단 장비 등의 도움을 받아 사실로 밝혀졌다.
굴레나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해탈(解脫)은 불교에서 열반과 함께 동의어로 사용된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해탈인가? 윤회로부터 해탈이다. 윤회(輪廻)는 바퀴가 돌 듯이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었다 죽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순환과정을 말한다.
윤회는 원래 인도 원주민의 토속종교에서 출발해 힌두교가 받아들였고 한국 불교도 힌두교 윤회를 받아들여 이와 비슷하다. 힌두교 윤회는 신분간 계급차이가 엄격한 카스트제도의 피지배층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상이다.
한국불교의 윤회는 중생의 번뇌와 업(業) 때문에 삼계육도의 생사(生死) 세계 순환을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오랜 세월을 걸쳐 계속된다는 이론이다. 해탈은 이러한 윤회의 순환 고리에서 벗어남을 말한다.
또 하나의 윤회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풀이되는 고락의 윤회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즐거움인 락(樂)의 본질이 괴로움(苦)이며 이것의 뿌리를 욕망으로 본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괴로움이 사라져 고와 락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해탈은 고와 락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의 경지를 말한다. 고가 완전히 소멸됐다는 의미에서 열반이며 반야(지혜)라 부르기도 한다. 두 종류의 윤회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가 해탈이다.
불교의 해탈은 고와 락, 생사의 무한 반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를 말한다. 그러면 사람에게 고락은 왜 생기는가? 그것은 욕망 때문이다. 욕망이라는 근저에는 육체의 본능이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죄의 본능이다. 인간 내면에 죄성이 움크리고 있기에 자아와 죄와의 다툼에서 욕망을 이겨 낼수 없다.
그래서 불교는 해결 방법으로 무아를 제시했다. 자아를 통째로 죽여 욕망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다. 그러나 육체의 기본본능인 식욕과 수면욕이 사라지면 육체의 생명이 끊어진다. 진정한 무아 상태가 되면 자아가 사라져 식욕과 수면욕이라는 생명의 필수 요소마저 무시해 죽게 된다. 육체는 생존을 위해 본능이 존재한다. 그래서 자아는 죽기 전에 벗어날 수 없다.
불교 수행자는 무아를 구하지만 무아 상태가 되면 스스로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무아를 깨달았다 가정하면 마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몸은 죽는다. 죽음이후 심판이 기다린다.
누구든지 어떠한 정신 현상을 갖든지 죽음을 피할수 없다. 그러면 깨달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증명할 방법이 없다. 모두 죽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부터 모든 불교 수행자가 죽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구원은 다르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서만 영혼 구원이 가능하다. 마음에 이뤄진 사실이 동일하기에 언어만 통한다면 생각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66권의 성경에는 물질적인 증거가 기록돼 있고 이 증거를 통해 성경을 믿으면 성경에 기록된 영적 사실도 믿다.
해탈이든 구원이든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는게 목적이다. 기독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를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규정했다. 죄로부터 자유함이 인간의 진정한 지유함이라는 의미다. 기독교의 자유함은 실제 상당수 그리스도인이 누리면서 산다. 그러나 불교의 해탈은 어떠한가? 무아 상태나 만물과 일체가 되는 해탈의 정신 현상은 좌뇌의 자극만으로 그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뇌과학에서 이미 오래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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