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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줄에 심상(心象)을 거는 시인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10월 15일(화) 16:31 가+가-
첫 줄이 아름다운 문장은 첫 줄이 꿈꾸는 세상이다. 한국현대 시의 태동기로 여겨지는 191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첫 문장을 연구하고 심상(心象)이 시인의 일생이다.
현대 시의 첫걸음, 김소월이 1922년에 발표한 <엄마야 누나야>는 첫 행은 시를 대하는 독자의 마음을 이끌기에 충분하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쉽고 간결하다. 누구나 있음 직한 고향의 이야기처럼 친숙하게 다가온다.
소월은 사르트르의 지적대로 시는 산문과 달리 언어를 수단으로 쓰지 않고 사물로 다루는 것에 익숙함을 놓치지 않았다.
같은 해에 <진달래꽃>을 보아도 그렇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라는 마음은 한국민의 정서다. 교과서에서 만나는 구절로 외우기에 익숙하다.
소월이 1925년에 발표한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라고 한다.
소월은 시에서 언어는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존재의 근본 원리가 되는 형상적 실체로서의 질료(質料)로 묘사한다. 소월은 시의 특성으로 지적되는 응축(凝縮)은 언어의 경제학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
최소한의 언어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해 압축과 집중, 동일과 응결에 최선을 둔다. 여기서 시적 긴장과 정서적 고양도 가능해진다. 이러한 언어건축으로서의 시의 특성을 살려내기 위해 소월은 언어의 연금술사가 돼야 함을 인식한다. 일상어로 시를 쓰되 시어의 선택과 운용에서 최대한 미적, 긴장감을 거두어야 한다.
소월의 시를 살피면 러시아 형식주의인 슈크로브스키(Chklovsky)와 같이 ‘낯설게 하기’ 효과를 제고 하며 적절한 기제로 활용했다.
소월의 시 뿐 아니라 한용운의 1926년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임은 갔습니다.’ 1927년 정지용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는 시에서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을 알게 해준다. 심훈의 1930년 <그 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정지용의 1932년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의 시도 이미지는 심상과 인상으로 나누어 설명하지 않고 언어 미에서 현상의 마음으로 재생하여 준다.
이상의 1934년<오감도 烏瞰圖> 詩題一號,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라는 이상의 시는 앞에서 전달하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감각적으로 다가서는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으므로 알게 하는 시대의 자극을 전한다.
유치환의 1936년 <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은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을 주지한다.
이미지를 포착하고 추적하는 힘이다. 대상을 향하여 상상하게 하는 형식이다. 노천명의 1936년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의 사슴은 전형적인 심상과 인상으로 설명되는 시다. 심상은 감각에, 의하여 획득하는 현상이다. 인상은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받는 느낌이다. 문학, 특히 시는 주로 심상(心象)이다. 박목월 선생은 심상의 시인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기에 생전에 심상의 잡지를 만들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이렇듯 십여 편을 살펴보면 첫 문장의 특성은 시인의 개성과 심오한 연구의 결과물로 드러난다. 감동적, 신선미로 시선을 끌어들이며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상징성과 이미지 면에서도 시의 주제를 암시하는가 하면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한다.
첫 문장은 우연의 결과도 아니다. 광화문의 교보빌딩에 걸린 걸개 시를 보아도 첫 문장이 시선을 심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들이다. 이기철 시인이 말하듯, ‘시는 세상 안쪽이 다 만져지는 시’를 쓸 때만이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는다. 시는 숨과 밀접하다. 숨을 멈추는 것은 관념의 순환을 멈추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비우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숨 쉬는 이유는 사유와 삶이 개별적 우주가 아니라 연관됨을 의미한다. 우리의 일상은 오래된 오솔길, 즉 잃어버린 세계의 통로를 여는 것에 흥미와 친절의 사고를 지닌다. 그러면서 돌이 불탄다거나 별이 교미를, 한다는 시적 은유에 영적이며 연금술사 적인 은사에 빠지게 된다. 진리는 경험의 미소가 들어 있다. 상상의 논리학을 연구하고 심상을 펼치는 일이 시가 노심초사(勞心焦思)케 하는 난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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