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속 프랑스 문화기행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2년 12월 20일(화) 16:37 가+가-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된 이유가 있다. 도시가 말하려는 것을 듣고 싶어진다. 나 자신과 인간의 낯선 삶에 대하여 감정을 나눈다. 그래서 여행은 늘 감정과 발끝이 먼저 나서려 한다.
그러려면 도시가 말하려는 것을 알아들어야 한다. 보이는 것은 하나의 시선의 공간일 뿐이다. 그 시선을 해석하려면 필요한 정보다. 2022년 끝자락 베트남 하이퐁을 방문했다. 하이퐁 문화 속에는 프랑스의 문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국인에겐 베트남을 많이 알고 있다는 선입견이 있다. 60년대에 삼촌이나 아버지가 베트남 참전을 했다. 그 아스라한 통조림 이야기들이 일상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박항서 축구 감독이 베트남에 축구 기술에 혁혁한 공로를 남겼다.
덩달아 베트남 뉴스에 초점이 되기도 했다. 그런 사연 속에 우리는 베트남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 군에 입대하고 베트남 전쟁에 지원한 소설가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도 한몫을 한다. 소설은 지금껏 다루지 않았던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문단과 문학을 꿈꾸는 젊은이의 주목을 받았다.
박영한 소설에 이어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과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머나먼 쏭바강이 처음으로 월남전을 다루어서인지 관심 속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TV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뚜이아호 쏭바강을 찾는다. 쏭바강 주변에 집들의 지붕은 빨강 색으로 이국적이다.
다리 너머는 남지나 해로 남중국해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으로 물고기가 많은지에 물었으나 답변이 시원치 않았다. 물고기를 잡는 어선이 없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가 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36년 받았기에 베트남도 그런 정도의 프랑스 지배국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한국의 두 배에 가까운 60년의 프랑스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가 예술을 존중하고 건축문화를 사랑하는 나라이기에 베트남의 불교 관련 문화와 건물이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제국주의 나라였던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은 하나같은 행동을 보인다.
그들은 문명화 내지 선교화 사업화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미개발 지역을 식민지화하고 현대적인 정치사상, 사회 개혁, 산업적 방법 및 신기술의 도입이 자신들의 책임 인양했다. 마치 유럽이 없는 문명화는 없으며 빈곤만이 남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의 정치, 경제적 침탈을 했다.
일본이 한국에서 그려 하였듯 이익과 자원을 착취해 갔다. 그들은 무모하거나 잔인했다. 프랑스의 지배하의 나라들을 집합적으로 인도차이나라고 부른다.
지배하에 있는 프랑스의 관리들은 상당한 자율성과 권한을 가졌다. 필요 이상의 권력을 행사했다. 식민주의 베트남 도시에 물리적 변화를 가져왔다. 천년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지역 사찰, 탑, 기념물 및 건물은 버려진 것으로 선언이나 하듯 파괴하고 그들의 문화를 뿌리내렸다. 프랑스 건축과 스타일의 건물이 그 자리에 세워졌다.
도시, 마을, 거리의 베트남 이름이 프랑스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은행과 상업 거래의 중요한 비즈니스는 현지 언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수행되었다.
이런저런 수난의 베트남이지만 오늘의 베트남 시민은 우리의 80년대의 순수와 감성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지만 친절했다.
우리가 만난 문인들은 진심으로 따뜻함을 보였다. 한국어 관심도 컸다. 초대받은 하노이 폴리텍대학 부이 광팅 (Mr, Bui Quang Thinh. 37세) 이사장은 나라의 미래는 교육에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어과에는 한 학년에 1500명의 학생이 한국인 교수에게 수강하고 있다. 80년대 한국의 대학 등록금이 50만 원이었다. 베트남 대학의 한 학기 등록금이 50만 원 이었다. 기숙사는 시설이 잘되어 있다. 체육장시설도 현대적 기구를 갖추었다. 베트남은 프랑스 지배를 벗어나며 옛 사찰의 문화를 복원하는데, 힘을 모았다. 사찰 문화는 유네스코의 주목을 받는 규모로 장대하다. 밤 야경은 독창적이고 환호성을 질러도 무안하지 않다.
긍정의 모습인지 베트남인들은 프랑스 식민지배하의 문화적 환경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며 역동적이다. 대중가요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이제야 돌아왔네’ 노래가 들리는가 싶다. <머나먼 쏭바강>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베트남의 아가씨, 빅뚜이는 철모 속의 김 상사가 지금도 그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