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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를 그리는 고추잠자리
최창일 시인·이미지 문학평론가
작성 : 2022년 09월 20일(화) 16:46 가+가-
하트는 심장이다. 심장은 붉다. 인디언들은 시신을 훼손하여도 심장은 절대로 훼손을 하지 않는다. 전설처럼 지킨다. 심장은 그만큼 신성시하였다. 하트를 그리며 짝짓기하는 곤충이 있다. 잠자리다. 잠자리는 짝짓기 중, 두 잠자리가 힘을 모아 하트를 그린다. 가을이면 하늘을 돌며 노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는 잠자리다. 얼핏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으로 비춘다.
아름다운 한 쌍의 달콤한 비행으로 보인다. 사랑해서가 아니다. 수컷이 짝짓기를 끝난 후에도 떠나지 않다 보니 그러는 것이다. 곤충학자들은 잠자리의 수컷은 집착이 강한 곤충으로 분류한다.
다른 수컷이 접근하지 못하기 위해서다.
원천 봉쇄의 작전이다. 심지어 어느 잠자리의 종은 다른 수컷의 흔적을 퍼내기까지 한다. 다른 누군가의 유전자가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대대손손 이어가려는 의도다. 이 작고 가냘픈 친구들이 ‘숭악한’ 행동을 보인다. 잠자리는 한 곳에서 멈추어 비행할 수 있다. 군용 헬기가 잠자리 비행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3억 년을 그렇게 종족의 보존을 위해 노력을 해 왔다. 그들의 살아온 역사는 아득한 원시의 시대부터다. 석탄기의 시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까지 올라가도 600만 년에 불과한 인간에 비하면 인류의 어른이다.
잠자리가 어마어마한 시간을 살아오며 그야말로 별의별 세상을 살아왔을 것이다.
인간이 짧은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이런저런 사랑의 사연이 많았는데 잠자리의 3억 년의 긴긴 세상은 상상이 가고 남는다.
짝짓기를 끝낸 잠자리는 알을 낳아야 한다. 대체로 그들은 전원생활과 호숫가에 자라는 풀잎이나 물가 근처의 모래 속에 알을 낳는다. 그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언제 어디서 다른 종인 개구리와 파충류가 알을 먹을까 노심초사하며 생을 마친다.
잠자리의 종은 5천 종이 세계의 곳곳에서 살아간다. 한국에는 87여 종이 살고 있다.
강원도 한계령 근처의 잠자리는 초병과 함께 보초를 서는 모습이 가히 3억 년 가풍의 곤충이다. 원통의 산에는 전쟁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있다. 오래된 철모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잠자리는 철모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시간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도 가냘픈 날개의 숭숭한 구멍으로 통과시키며 나 몰라라 오침을 즐긴다. 부스스 깨어나 가을의 구름 아래 울긋불긋 고운 장단으로 춤을 춘다. 가는 여름 배웅하고 오는 가을 마중한다. 긴 그리움 건너는 솜씨가 또 있을까. 잠자리 속도에 맞추어 먼 길 가는 뭉게구름, 푸른 잎들에 손짓한다.
그래 흔들리는 것들은 잠자리에게 배우자. 바로 세우는 세상도 배워보자. 바로 서기 위해서는 때론 바로 흔들려야 한다는 것도 알아가자. 하늘거리는 몸짓으로 초병의 총대 끝, 두려워하지 않고 잠이 드는 모습을 보라. 3억 년 하늘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무지개를 타고 가는 가을의 노래를 나만큼 부른 이도 없다. 코스모스가 노를 저어 희망의 나라로 가는 것을 나와 함께 한다. 고추가 익어가고 있다. 할머니는 도로 곁에 고추를 널고 있다. 붉은 고추에 시샘하듯 붉은색을 훔쳐먹는다. 얼마나 훔쳤을까 날개와 몸통이 붉다.
고추잠자리의 붉음에서 립스틱이 생겨났다는 말이 있다. 잠자리의 짝짓기 모습에 하트가 생겼다는 말이 있다. 여자들이 즐겨 입는 패션의 실루엣 디자인이 잠자리 날개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말들은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가을이면 듣고 싶은 노래가 있다.
‘아마 나는 아직은/어린 가봐 그런 가봐/엄마야 나는 왜/자꾸만 기다리지/엄마야 나는 왜/갑자기 보고 싶지/아마 나는 아직은/어린 가봐 그런 가봐/엄마야 나는 왜/자꾸만 슬퍼지지/엄마야 나는 왜/갑자기 울고 싶지/가을빛 물든 언덕에/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나/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외로움 젖은 마음으로/하늘을 보면/흰 구름만 흘러가고/나는 어지러워/어지럼 뱅뱅 날아가는/고추잠자리/아마 나는 아직은/어린 가봐 그런 가봐/엄마야 나는 왜/자꾸만 기다리지/엄마야 나는 왜/갑자기 보고 싶지/랄라라 랄라라/랄라라 라라라라/랄라라 랄라라/랄라라 라라라라/가을빛 물든 언덕에/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나/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외로움 젖은 마음으로/하늘을 보면/흰 구름만 흘러가고/나는 어지러워/어지럼 뱅뱅 날아가는/고추잠자리/아마 나는 아직은/어린 가봐 그런 가봐/엄마야 나는 왜/자꾸만 기다리지/엄마야 나는 왜/갑자기 보고 싶지//’ 조용필이 작사 작곡하고 노래한 <고추잠자리>다.
고추잠자리는 노을을 좋아하기에 슬픔을 모른다. 가을은 고추잠자리가 있어 떠도는 흰 구름도 외롭지 않다. 하나뿐인 공간은 고추잠자리의 무대다. 잠자리는 인간이 소중하게 여기는 하트를 그리며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워지길 원하는 곤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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