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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을 향한 반성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08월 06일(화) 16:31 가+가-
우리들은 무엇인가! 우리들은 칼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무서운 칼날은 시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말을 하며 시를 만들었던 최은하 시인이 가신 지 1년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선생은/“아득하다는 것”의 언어를 정의하곤 했다./“내 당장의 실상 가운데 반영의 드러냄일 수도/ 하늘과 땅과 어쩌면 이렇게도/아득히 멀리 보이기만 하는지”라는 말을 해주었다.//“물방울 속 빛나는 소릿결”(최은하의 시 제목) 대화들/토요일이면 대학로 보리밥집 창가엔/노을이 내리며 선생의 전차가 쿨렁쿨렁 지나갔다//종소리도 가는 길 따라간다는데/미루나무 바람 소리도 떠나길 싫어한다는데//상여길 황톳길/그리움의 중심 시어들 알알이// 다시 여름의 가운데 서면/선생께 반성한다/더 자주 뵙지 못하고 귀 열지 못한 것을//권일송 시인이 먼저 간 마을,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눈을 감고 우두커니 바라보면/최은하 선생은 이미 천국의 문 안이다’ (최창일 시 반성 전문)
한 시인에게 현실적 모순을 표출하고 시대적으로 부족한 의지들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최은하 시인은 민중 속의 시인으로 높은 도덕적 자각에서 비롯된 탐구의 시어를 품고 살았다. 선량의식(善良意識)을 철저하게 배격하고, 이른바 선택된 자들끼리 암호로서의 시를 감히 지양하였다. 모든 사람이 알아듣게끔 그의 음성은 높고 세련이었다. 끼리끼리의 문단을 이르러 칼날이고 무서운 칼날을 세웠다. 지지리도 못난 세상이 불꽃을 모르고 파당을 일삼는 것이라 했다. 진리 속에는 씨앗이 있다지. 사랑은 우리 시에 대한 불길이라 했다.
진리로 살다간 시인을 들어 함모 시인은 자신이 문단 선거에 나갔으나 한 표를 주지 않았다고 심한 욕을 하였다. 지지리도 못난 사람이 죽은 자의 뒤에 욕한 자들이라 한다. 법에서도 망자의 죽음에는 사법의 자를 거두는 것이 세상이다. 할진 데 선비라 자처하는 사람이 후학을 두고 망자의 뒤에서 험담하는 세상이다. 나는 최은하 시인과는 사제도 아니다. 그의 시적 영향을 눈곱만큼도 받지 않았다. 다만 그의 선비적 기질과 후학을 사랑하는 마음이 좋았다. 시인은 보리수 낭송회를 20년이 넘게 황금찬 시인과 같이 이끌었다.
나이 지긋한 노 시인은 두 편의 시를 가져오게 하여 합평의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 문인협회 회장, 한국현대 시인협회 이사장과 고문을 지냈다. 시인은 권일송 시인을 형님으로 모시며 가까이 하였다. 권 시인이 별에 가자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다. 그의 빈소를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최은하 시인이 별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권일송 시인의 장남 권혁 선생께서 최은하 시인의 빈소를 찾기도 했다. 내가 권일송 선생의 제자라는 의미에서 선생과 나는 가까이하는 계기가 됐다.
선생의 시적 내공이나 시인이 역사를 보는 눈은 우리의 시선을 끌기에 족하셨다. 근대의 특징의 하나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등장과 함께 민중의 개인적 자유에 대한 자각을 늘상 품고 살았다. 그가 가까이 한 권일송 시인, 황금찬 시인의 경향이 같았다. 목회하신 사모님께서 천국에 가신 뒤 소월이 살았던 왕십리 미나리꽝 자리 아파트에서 생활하셨다. 어느 날 균형을 잃고 넓적다리부에 손상이 되어 입원하셨다. 입원 뒤 같은 시인인 최규창 동생만 병실을 들게 하였다. 그 누구의 문병도 받지 않았다. 그것이 최은하 시인의 평소 자존이며 태도다.
시인은 나와 대학로 보리밥집을 한 주에 한 번 씩 약속했다. 어느 날은 황송문 교수가 자리를 같이했다. 그러다가 개인적 시간이 맞지 않아 주마다 만남은 공표가 더러 있었다. 생각하면 선생과 잦은 시간을 못함이 한없이 송구하고 반성이 된다. 더욱이 아픈 것은 선생이 가시기 전 스님들의 마지막 가는 길의 이야길 종종 했다. 스님이 가는 날을 알고 가는 것은 곡기를 스스로 조절한다는 것이다. 자존이 강한 선생께서 마지막 가는 길을 수도승이 하는 곡기 조절이 아니었나 하는 짐작이다. 자존이 강한 선생은 곡기로 가는 길에 초연함을 택했을 수 있다.
선생은 2008년 <마침내 아득하리라> 시집을 통하여 아득하다는 것의 정의를 이미 하였다. 마지막 시집은 2019년 <푸른 별나라 풍경>이다. 선생은 두 권의 시집을 통하여 시의 결산을 이미 하셨음을 알게 한다. “돌아보면 엊그제만 같은데 차암 먼 길을 돌아온 듯싶다”라는 선문 같은 시구를 남기고 성하지중에 뉘엿뉘엿하시었다. 선생님 권일송 형님, 황금찬 시인과 부디 세상 소리 날려두고 하늘의 기러기에 대하여, 하늘의 바람 소리에 대하여만 시의 건축을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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