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의 마음을 사로잡은 ‘뉴진스님’
김영준 경제학 박사
작성 : 2024년 05월 19일(일) 16:28 가+가-

최근 뉴진스님이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개그맨 윤성호라는 인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가 뉴진스님으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며칠전 윤성호가 유 퀴즈 온더 블록에서 뉴진스님의 탄생 비화 썰을 풀어 놓으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개그맨 윤성호는 각종 개그 프로그램에서 빠박로티, 바보 빡구 등 여러 캐릭터를 맡으면서 활발히 활동했었다. 개그맨으로서 매너리즘에 빠져 캐릭터 바꾸기에도 어려움이 많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개그맨으로서 무대에는 서지 않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그가 생계를 위해 DJ를 배우게 되었고, 코로나로 인해 일도 없었기에 살아남고자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하게 되었다.
몇 년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야심차게 새로운 컨텐츠를 제작하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잠시, 유튜브 채널이 해킹 당하면서 모든게 다 무너져 버린 것이다. 찾아 주는 사람도 없고 섭외하는 사람도 없고 절망 속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좋은일이 생기면 나쁜 일이 생긴다, 쓴맛을 느끼면 단맛을 느낄 수 있다” 라고 다짐하며 마음을 부여잡고 새로운 컨텐츠를 모색했다.
윤성호는 오랜 불교 신자이기도 했지만, 작년 부처님 오신날 연등행사에서 사회를 맡아 디제잉 퍼포먼스를 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실제 뉴진스님이라는 법명은 출가한지 50년이 된 큰 스님인 오심스님이 지어주신 법명이다. 윤성호는 원래 일진이라는 법명을 썼었는데, 오심스님이 ‘뉴(NEW)’와 ‘진(進)’으로 ‘새롭게 나아간다’라는 뜻으로 지어주셨다. 법명이라는 것이 영어든 한문이든 뜻이 좋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며 지어준 것인데, 오심스님이 깨어 있는 스님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불교의 포용력이 아닌가 싶다.
윤성호는 뉴진스님으로 작년 부처님 오신날 연등행사에 이어 올해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 출연하여 스페셜 게스트로 디제잉을 진행했다. 스님처럼 승려복을 입고 헤드셋을 끼고 디제잉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수천 명의 시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올해 열린 국제불교박람회에는 역대 최다 참가자가 참가했다.
조계종에서 젊은 MZ세대를 포용하려는 새로운 시도였고 최고의 성과였다.
뉴진스님의 인기는 계속 되었다. 여러 행사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뉴진스님의 노래가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대만, 홍콩 등 세계적으로 인기가 이어졌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 한 댄스 클럽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불교계에서는 윤성호가 스님 분장을 하고 디제잉하는 공연이 불교의 종교적 요소를 희화하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불교계의 신성모독을 일으키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내무부 장관에게 공식적으로 입국을 금지하는 요청을 했다. 결국 뉴진스님의 말레이시아 공연은 취소되었다. 과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의 한 클럽에서 윤성호는 지금과 동일하게 스님 분장을 하고 디제잉하는 공연을 했었는데, 관객들의 엄청난 반응과 호응이 있었다. 이 영상이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말레이시아 공연 취소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지 않나 싶다.
이번 공연은 불교계의 새로운 시도이자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엄숙하고 고요할 것만 같은 불교에서 힙합이라는 이색적인 장르를 포용한 것은 엄청나게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반면에 불교라는 종교의 본연적인 특색과 역할을 잃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불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지만 청년 신도들이 사라지고 있다. 모든 종교가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공통된 위기의식이다. 불교에서 새로이 시도한 이번 공연을 통해 MZ세대들이 불교에 대해 관심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불교의 메시지를 듣게 되고, 메시지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불교의 포용과 상생 그리고 무념무상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경쟁하고 억압 받는 삶 속에서 무한한 포용력을 지닌 불교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종교 본연의 특색과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바뀔 필요는 있다. 종교도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