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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문학과 가요의 관계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05월 07일(화) 16:44 가+가-
박이도 시인은 국문학을 강의하면서 시와 가요에 대하여 구분 짓고 강의하였음을 말한다. 순수시의 순혈주의 경향의 대목이다.
시는 순수문학을 말한다. 가요는 대중가요라는 점이다. 순수문학이 앞서고 가요가 그 뒤에 있다는 정의는 그 어디에도 없다. 대중가요는 대중이라는 단어가 말하듯 대중들이 선호하는 노래다. 대중가요는 그 시대의 반영이다. 그러기에 대중가요는 시대의 유행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다반사다. 사라지지 않고 대중 속에 머물고 있다면 전혀 다른 해석이 될 것이다.
박이도 교수는 ‘아나스포라anspora(귀향)의 꿈’의 주제를 가지고 강의 준비를 하면서 가요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말을 한다.
시인은 한평생을 유랑(디아스포라)의 세월로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다. 아홉 살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38선을 넘어 자유 대한에의 땅으로 탈출했다. 시간이 흘렀으나 끝내 돌아갈 수 없는 처지다. 이스라엘민족의 광야 40년 동안 고난의 역사를 떠올린다.
‘그리운 내 고향/돌아가고 싶구나, 우리집으로/나의 디아스포라 diaspora 70년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이미 부모 형제는 모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네/나는 천애(天涯)의 고아가 되었네/그 한세월 나는 외톨박이 신세//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던/3.1운동의 그 함성이 되살아나는/해방의 환성도 잠시/무신론자, 김일성의 공산주의자로서부터 쫓겨난 신세/우리 가족의 디아스포라는 시작되었다./디아스포라 그 끝이 아직 안 보인다/나는 간절하다/내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나의 아나스포라anspora/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을 넘어/하나님의 언약을 나는 믿는다’
박이도, <아나스포라> -서막(序幕) 전문이다.
시인은 “한평생의 꿈은 도로(徒勞)에 그치고 말았다. 고향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은 끝내 이룰 수 없게 되었지만 내 영혼은 인생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다짐하는 시간을 맞이한 것이다” 박이도 시인은 분단의 조국, 가슴에 응어리가 크다. 김대중 정부에서 고향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시인은 김일성의 공산 사상이 존재하는 땅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심정은 그때와는 다르다는 것도 말한다. 고향에 대한 연민이 생의 뒤에서 생각하니 절실하다는 표현으로 읽힌다. 이렇게 시와 인간의 사유는 늘 변하는 것이다.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 리 길/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삼팔선을 탄한다//아~ 꽃 필 때나 오시려느냐/아~ 눈 올 때나 오시려느냐/보따리 등에 메고 넘는 고갯길/산새도 나와 함께 울고 넘었지/자유여 너를 위해 자유여 너를 위해/이 목숨을 바친다//아~ 어느 때나 터지려느냐/아~ 어느 때나 없어지려느냐/삼팔선 세 글자를 누가 지어서/이다지 고개마다 눈물이던가/손 모아 비나이다 손 모아 비나이다/삼팔선아 가거라’
남인수 작사 작곡, <가거라 삼팔선>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은 1947년부터 불린 것으로 기록된다. 분단의 비극을 묘사한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당신은 철삿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고개/
반야월 작사, <단장의 미아리 고개> 부분
9.28 수복이 되기 며칠 전부터 퇴각하던 인민군은 많은 포로와 민간인을 포승줄로 엮어 미아리고개를 넘어갔다. 이때 북으로 끌려간 사람들과 남한에 남은 가족 간의 생이별은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박이도 시인은 새삼스럽게 순수시와 대중가요의 분리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머문다는 것이다. 시인은 “대중가요도 감동으로 다가올 때 예술이 된다”는 것이다.
고은 시인은 세노야 세노야>를 작사하였다. 고은 시인은 강좌에서 순수시를 쓰는 시인이 대중가요 작사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거리껴 세노야를 끝으로 더는 노랫말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고은 시인의 견해일 것이다. 시인이 대중가요 가사를 만들지 말라는 교과서적 견해는 없다는 것이 정론이다. 박이도 시인의 변화된 예술론에서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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