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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수의 시간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04월 23일(화) 16:42 가+가-
수구에서 반칙한 선수가 풀 밖으로 잠시 물러나는 시간이 퇴수(退水)다. 축구에서도 반칙하면 퇴장(退場)의 규칙이 있다. 경기에서 반칙의 정도에 따라 잠시 나가 있거나 그 경기를 뛰지 못하는 퇴장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살아가는 순간, 퇴수가 따른다. 퇴수의 순간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선수의 기량은 다시 빛을 발한다. 선수가 심판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운동장에 들어와 경기에 임한다. 다시, 반칙하여 그 경기를 뛰지 못하고 퇴장을 당하는 경우를 본다.
세상은 곳곳에 퇴수 당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떤 이는 18년이라는 퇴수의 시간을 보낸다. 젊은 청년은 순간의 선택 실수로 퇴수를 당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청년에 “퇴수의 시간이 자네의 미래가 달렸네”라며 정치적인 한 수를 알려주었다.
그 청년이 지금은 중년이 된 김민석 의원이다. 정계 입문을 어린 나이에 했다. 1964년생이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14대 총선에 출마했다. 하지만 15대 총선에 당선한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던 김민석에게는 시련이 왔다. 정치는 늘 그렇게 퇴수의 시간이 오는 것이다. 무려 18년의 퇴수의 시간이었다. 어떻든 김대중 대통령이 일러준 퇴수의 공백을 선용하여 2020년 21대 의원에 퇴수의 시간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다시 22대 의원이 되었다.
황금찬 시인은 시인에게 퇴수의 시간은 중요하다 했다. 시인은 예민하기에 그 예민함이 퇴수의 시간을 허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이라는 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시골에서 시를 쓰겠다고 서울로 올라온 여자가 있었다. 그는 박의 시가 좋다고 명동의 갈채 다방을 찾아왔다. 키가 작고 인물은 그다지 없었다. 여자는 박을 따랐다. 다방에 가면 다방에 술집에 가면 술집의 말동무가 되었다. 결국은 박의 집에서 빨래도 하여주고 살림을 제법 하였다. 글도 잘 쓰고 책도 잘 읽고 나무랄 데가 없었다. 황금찬 시인은 어느 날 박을 조용히 불러서 차를 마시며 여자를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자네는 지금 퇴수의 시간이 아닌가 싶네” 박은 웃으며 착한 아이라 했다.
박은 아이의 이름을 매미라 했다. 매미처럼 작다는 의미의 귀여운 이름이었다. 박은 곱고 미운 것은 느끼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지. 장미꽃도 가시가 있다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지론을 말하곤 했다. 그렇게 박은 매미를 옹호했다. 매미와 한두 달쯤 살았던 박에게 급히 연락이 왔다. 여자아이가 집 안에 있는 돈이 나갈만한 물건을 죄다 들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은 서울이 자신을 부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청진동 술집에서 해장국을 먹으며 서울을 떠나겠다고 했다. 황금찬 시인은 박을 회상하며 인생의 퇴수를 잘못한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렇다. 운동 경기에만 퇴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매 순간이 퇴수의 시간이다. 서울을 떠나기 전 박은 정릉의 골짜기에서 들국화 한 다발을 꺾어왔다. 황금찬 시인에게 꽃다발을 안겨준 박은 다음 날 지방의 도시로 떠났다.
‘하늘이 내려왔다 간 자리에/ 고운 마음씨는 뿌리하는가/ 별빛 먹고/ 노란 다복 꽃송이.// 아무도 없기에 차라리/ 슬프지 않은 고독이 좋아/ 피었다/남몰래 지는 넋이여.//누구를 위하여 불러보는/ 이름이냐/메아리는 찡/골을 울려가는데/ 고요 적 두메에 피는 들국화.// 하늘은 저렇듯이 높아만 가고/머루와 다래는/단물 드는데/10월 한낮을 산새가 운다’
박기원 시인의 <들국화> 전문이다.
누구에게나 추억의 비탈길은 있다. 장엄한 생활 길에 꽃잎을 뿌리는 시간도 있다. 아침이면 창가에 새들이 날아와 노래인지 울음인지 구름 위의 소식을 전하다가 제 갈 길을 떠난다.
퇴수의 시간은 시곗바늘 되어 분주하게 움직인다. 가난한 자의 시간이든 부유한 자의 시간이든 시간은 공평하게 흐른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은 모두 시들러 버렸고”라고 했다.
보들레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는 촉불을 켠다. 정치인은 권력을 위하여 촉불을 켠다. 인간은 감정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그 감정의 시간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이 퇴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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