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다양성사회에서 옥·석 가리는 진지함 있어야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4년 03월 11일(월) 16:47 가+가-

총선 출마자들의 공천과, 본선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공천과정에서도 옥·석을 가려야 하겠지만 본선 레이스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에는 유권자들의 진지함이 더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학연이나 지연이나 이런 정에 얽매여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옥·석의 뜻과 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옥·석을 가린다는 사전의 뜻은, 옥과 돌이라는 뜻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옥과 같이 변함없이 일을 잘해 나갈 수 있는 인재를 고르는 것을 뜻한다. 그 기준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겠지만 단 몇 가지로 요약한다면 ‘인격’을 제대로 갖추고 ‘균형 감각’이 있으며,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자로 정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 국가는 사람의 외모와 생각이 천차만별이고 문화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을 모아가는 토론문화가 활발해야 하고 담론이 모아지면 자신의 생각을 공통된 여러 사람의 생각에 양보해 가는 과정을 통해 통합의 기교를 이루어가는 매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이루어 가는 성숙한 사회를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지도자를 뽑기 위한 선거과정도 유권자 개개인의 의사결정이 존중되어 표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성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속성, 즉 “그 사람은 나와 다르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신문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사진이 있다. 유세장에서 입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큰절을 올리는 장면. 양복과 손에 흙이 묻거나 말거나 맨땅에서 절을 하는 열성까지 보이는데, 그 앞에는 흐뭇하게 내려다보며 상전의 기분을 잠시나마 만끽하는 유권자의 순진한 모습이 클로즈업되고 있다. 국회의원에 당선될 경우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고 종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은 후보의 큰절이 한낱 쇼에 불과하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일단 당선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태도가 돌변하는게 그들이다. 유권자들은 매번 속는 줄 알면서 절을 받는다. 그들의 큰절이 진심이라면 항상 국민을 두려워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 문화는 후보자가 대중 속에 침투해 가는 하나의 전략적인 수단이며 일종의 정치화하는 장이면서 후보를 각인시킴과 특정화해 나가는 기교로 받아들여진다.
다양한 제 조건들을 충족시키면서 옥·석을 가리려면, 우선 헌법에서 요구하고 있는 자질로는 헌법 제46조에 규정한 대로 ①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 ②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한다. ③국회의원은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공공단체 또는 기업체와의 계약이나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 그리고 국회의원도 공무원의 하나이므로 공직자 윤리 등을 지켜야 한다. 다음으로 국가와 지역을 위해 실현 가능하고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는가? 한 지역의 이익만 주장하는 사람은 아닌가? 성실하고 부지런한가? 납세 및 국방 의무를 비롯한 국민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가? 평소 법과 질서를 잘 지키는가? 살펴봐야 한다.
오래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보면서 특히 수비에서 “홍명보가 공을 잡으면 안심이 된다”라는 얘기들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수비수들에게 공이 가면 완강히 달려드는 상대 공격수들을 피하지 못하고 쉽게 공을 뺏기는 장면들을 하도 많이 보아왔기에, 빌드 업을 무난히 해내는 홍명보에게서 안정감을 느낀 것이다.
그런 개인기는 타고나기도 하겠지만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천재는 1퍼센트의 재능과 99퍼센트의 노력의 산물이다 하지 않은가? 이는 국회의원이 갖추어야 할 자질과 봉사의 진지함으로 표현해도 좋을 듯하다.
과거에 무슨 일을 한 사람인가,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가 등 이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인재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금번 현역의원들의 공천탈락과정에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의 민낯을 보면서 개혁이 참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너는 꼰대구나 이제 집에 가’라고 말하고 싶다. 일꾼을 가려내는 진지함이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형제라도 떨어뜨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진영논리에 빠져서 옳은 것을 옳다고 하지 못하고, 틀린 것도 무조건 옳다고 하는 사람을 잘 분별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꼭 필요한 양심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썩지 않은 플라스틱과 같은 일회용품은 생태계를 망친다. 일회용품 같은 지도자보다 겉모습과 속사람이 같아야 하고, 부화뇌동하지 않는 인품을 갖춘 그리고 실력 있는 지도자를 골라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세대별 차이가 있다고 해도, 리더는 존경할 만한 인품과 진실한 정의가 앞서야 한다. 그럴만한 인물을 볼 줄 알고, 선별할 수 있는 건 국민의 수준에 달려 있다. 결국 옥·석을 가리는 진지함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한다. 국민의 교양과 품격, 시민사회의 수준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