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자산어보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9월 19일(화) 16:32 가+가-

“호남산 청어는 척추가 53마디고, 영남산 청어는 척추가 74마디입니다.”라고 흑산도 청년 창대의 박식한 물고기 정보를 <자산어보> 서문에 언급하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영화 <자산어보>가 그렇다. 실학자 손암 정약전과 흑산도 청년 창대 중 주인공은 창대가 아니냐 묻기도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니코스카잔스키와 조르바도 같은 경우다. 작가만의 독특한 혼각(混各) 기법으로 독자와 흥미를 나누려는 의도다.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생활에서 창대를 만나지 못했다면 한국의 최초 어류학서가 나왔겠는가?. <자산어보>에서 ‘돌김’을 소개한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김 양식을 한다. 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먹는 모습에서 산모에게 미역을 먹이는 풍습이 <자산어보>에서 소개된다. <자산어보>는 물고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관심이다.
정약전은 <목민심서>를 지은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 한양에서 천하제일의 천재학자로 소문이 났다. 정약용은 정조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는다. 정약용 형제는 서양에서 들어온 서학(천주교)을 수용한 죄로 유배를 당한다. 조정의 통치이념은 성리학이다. 천주교를 믿는 것은 성리학을 부정하는 것. 불행하게도 정조가 갑작스레 죽자 두 형제를 견제한 세력은 강진과 흑산으로 각각 유배를 보내게 한다. 순조 1년의 일.
세상의 끝이라는 흑산에 정약전은 도착한다. 순수한 섬 어부들은 대역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정약전을 먼발치 담 너머로 힐끔거린다. 재미있는 것은 제아무리 천하의 선비라지만 가거댁이라는 과부와의 연정이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연민과 사랑이 동행한다. 사랑과 연민은 상호작용으로 그 무게를 서로가 감당하지 못한다. 사랑에는 연민이라는 무게가 사랑을 우위 한다. 작가들은 연민과 사랑을 적절하게 혼합 흥미를 끈다.
섬 생활의 곡절을 겪는 정약전에 가거댁은 연민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한방을 쓰는 사이로 발전한다. 사랑은 지식이나 종교를 넘는다. 천주교를 받아 드린 죄인으로 흑산까지 유배를 왔다. 가거댁의 사랑은 천주교의 서학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늦 사랑이 무섭다.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의 견제와 세금 문제는 다르지 않다. 가거댁은 세금이 붙는 소나무 묘목을 파헤친다. 미역을 말려도 김을 말려도, 홍어를 잡아도 세금이 붙는다. 지방 관리들의 횡포는 섬도 예외는 아니다. 지켜본 정약전은 정치와 학문이 아닌 현실적인 백성의 삶에 보탬이 될 것을 고민한다. 약전이 할 일은 어류학서 <자산어보>가 섬 생활의 주민에게 필요할 거라, 생각한다.
섬에서 자라고 물길과 물고기에 해박한 창대 청년 어부가 흑산에 있다. 그는 나주에 사는 장 진사의 얼 자(천민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다. 어부 창대는 천자문을 배우고 글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깨달음의 한계에 부딪힌다. 약전은 창대에게 접근한다. 창대는 천하의 대역 죄인인 정약전을 멀리한다. 약전은 창대가 배움에 뜻이 크다는 사실에 지식의 거래를 제안한다. 창대는 못 이긴 척 수락한다. 창대의 도움으로 약전은 섬과 바다에 존재하는 생물들을 관찰 조사 기록한다. 둘은 지식의 나눔으로 스승이며 벗으로 발전한다.
창대는 약전의 가르침에 학문의 깊이가 더해 간다. 기회가 주어지며 창대는 다산 정약용을 만나게 된다. 창대가 정약용 앞에서 시를 읊었다는 소문을 아버지가 나주에서 듣는다. 정 진사는 창대를 양자로 입적하고 소과 과거 시험을 볼 것을 권한다.
마침 강진의 정약용은 유배에서 풀렸다.
정약전은 유배를 우이도로 옮기며 약전은 창대와 같이 갈 것을 권한다. 창대는 섬보다는 목민관(지방공무원)이 꿈이다.
약전은 창대의 앞날을 축원하며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한다. 창대는 소과에 급제를 하지만 지극히 차가운 현실에 부딪힌다.
부패하기 이를 데 없는 공무원의 생활에 환멸을 느낀다. 죽은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는 세상. 백성을 쥐어짜서 세금을 거두는 암울한 현실, 양반만을 위하는 정책에 창대의 목민심서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정조는 정약용과 약전의 형제에게 “벼슬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버티는 것이야.”라는 어록이 인상적이다.
우이도에 정착한 정약전은 창대에게 편지를 보낸다. “학처럼 사는 것도 좋으나 구정물 흙탕물 다 묻어도 마다하지 않는 ‘자산’ 같은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뜻있지 않겠느냐.” 그리고 약전은 은혜를 받는 성경 구절을 보탠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3: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