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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雜)의 전략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9월 12일(화) 16:35 가+가-
예전에 책과 신문 제작 과정에 활자를 뽑아서 쓰던 시절이 있었다. 활자를 뽑는 직업을 문선공(文選工)이라 했다. 80년대 신문사 문선공 기자와 대포를 나누던 시절이 있었다. 문선을 하다 보면 활자가 부족한 날이 있다. 무슨 글자가 부족한 경우였느냐 물음에 잡(雜) 자가 부족하여 납으로 글씨를 만드는 과정이 바빴다 한다. 물론 글자에도 많이 사용되는 글자가 있을 것이다. 많이 쓰였다는 잡(雜)은 섞일 잡이다. 풀초로 이루어 진다. 말의 사전적 의미는 가꾸지 않아도 무성하게 자라나는 여러 가지 풀을 이른다.
잡은 섞는 일부터 시작되는 말로 수많은 어휘의 글자다. 잡지, 잡다, 혼잡, 번잡, 조잡 등의 흐트러진, 경우에 다반사로 사용하는 연상어다.
잡담, 잡학, 잡일이라는 말도 딱히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지만 ‘자질구레하며 많은 것’이라는 이미지의 글이다.
오죽하면 신문사의 문선공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글자 1위로 뽑았겠는가. 잡이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잡초를 말할 때 가장 어울린 말이 아닌가 싶다. 좀 더 억지를 부리면 잡은 잡초를 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글이 아닐까 싶다.
잡초는 뜰이나 정원에서 다른 풀이 나오지 못하게 훼방을 놓는 풀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잡초의 원래 뜻은 나쁜 풀이라는 뜻은 없다. 잡어(雜魚)는 물고기가 떼 지어 다니는 이미지가 떠올린다. 여러 가지 나무라는 뜻의 잡목(雜木)은 여러 나무가 있다. 여기에 나쁜 물고기나 나쁜 나무라는 이미지는 없다. 잡초의 이미지가 있는 것은 곡식을 무시하고 잡초가 나올 때 농부는 잡초에 대하여 원망도 한다.
국내나 외국의 정원박람회를 가면 잡초도 정원의 식구로 어엿이 대접하는 경우를 본다. 논두렁에서 흔하게 나는 여뀌와 같은 잡초도 정원 식물로 군락을 만들어 놓으면 장관이다. 이렇듯 잡초도 정원 식물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대다.
섞일 잡(雜)이라는 한자의 부수는 ‘새 추(?)’다. 이름 그대로 새를 뜻한다.
예를 들어 ‘새 추(?)’가 ‘나무 목(木)’위에 있으면 ‘모일 집(集)’이 된다. 잡(雜)은 ‘모일 집(集)’에 ‘옷 의(衣)’이루어졌다.
옷 의(衣) 천을 뜻한다. 천은 다양한 초목으로 염색을 한다. 한가지 색에서 여러 가지 색의 천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잡(雜)이다. 수많은 색이 모이면 잡이 된다는 뜻에서 잡(雜)은 유래가 되었다. 중국에는 잡기단(雜技團)이라는 유서 깊은 서커스단이 있다. 다채로운 기술을 가졌다. 그 기술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높은 수준이다.
이미 고인이 된 김근태 정치인이지만 잡초에 대한 강한 글을 남겼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무기징역 받았다. 어느 봄날, 조그마한 창틀 사이에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잡초가 자라기에 여건이 좋지 않았다. 김근태 수감자는 잡초를 보면서 정조가 생각났다.
목민심서를 쓴 정약용에게 “벼슬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버티는 것이야”라는 말을 주었다. 정약용은 후일 유배 생활을 하면서 정조의 말에 힘이 되었다. 김근태는 창틀의 잡초가 정조의 말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잡초는 잡동사니에 비유도 된다. 잡동사니는 하찮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잡동사니도 주인에게는 소중하다.
잡초의 정의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다. 하나의 예로 길가나 밭에서 자라서 걸 리 적, 거리는 잡초로 보는 쑥은 떡의 재료다.
만능 약초로 이용된다. 요즘은 잡초로 분류된 쑥을 농작물로 기르는 마을이 있다. 논에서 자라는 미나리도 잡초다. 피를 정화 시키는 약용은 물론 채소로 각 광 받는다. 장소에 따라, 과학의 발달로 잡초가 식용이나 약초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식물을 연구하는 식물학자에게 잡초는 연약한 식물로 분류한다. 반대로 ‘잡초처럼 강하게 살라’는 말은 강한 식물로 인식된다. 잡초가 연약하다는 말은 잡초가 경쟁에 약하다는 뜻이다. 자연계에서 쉴새 없이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빛을 받기 위하여 앞다투어 위로 뻗어 올라간다.
순간이라도 앗 차 하면 잡초는 다른 잡초에 가리어 도태, 시들게 된다.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로 보이지만 잡초는 연약하다.
숲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잡초는 전쟁터다.
잡초는 치열하지만, 기본 전략이 싸우지 않는다. 강한 식물에 순수하게 물러선다.
한마디로 평화주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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