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이 우리를 독립시켰을까?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3년 08월 28일(월) 16:38 가+가-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8월 15일에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에 나오는 대사다. 자신이 만든 핵폭탄이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져 위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수십 만 명의 사상자를 내자 이론물리학자인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느낀 도덕적인 고뇌를 풀어낸 부분으로 보인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이면서도 군사용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해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묵인했다는 점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는 반면, 미국의 핵무기 개발계획인 “맨해튼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전쟁을 끝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과학적으로 그는 이론에만 머물렀던 핵분열 연쇄반응을 대형 실험으로 증명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 무시무시한 핵폭탄을 개발하여 핵실험 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일본에 투하하게 되었을까? 잠시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중립적인 입장이었지만 일본의 팽창을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미국의 이러한 견제에 일본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이를 원천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서는 미국이 더 이상 간섭하지 못하도록 미국과의 일전을 벌려 굴복시켜야 한다고 군부는 주장한다. 드디어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 해군 기지가 있는 하와이의 진주만을 불시에 공격하였다. 이 공격으로 미국은 진주만에 정박되어 있었던 항공모함을 비롯한 전투기 등 막대한 물적, 인적 피해를 입게 되었으며 미국 국민들의 여론은 분노로 들끓게 되었다. 미국으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게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자연스럽게 참전하게 되었으며, 결국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일본의 패망을 앞당기게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장본인인 독일이 항복을 하였지만 일본은 계속해서 독전을 하는 등 미국시민들의 피해가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내기 위한 한방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중화민국과 함께 미국은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을 강요하는 둥 종전을 위해 노력했으나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드디어 1945년 7월 15일 핵실험에서 세계 최초로 완벽한 성공을 거두게 되고, 일본에 두 개의 원자폭탄 투하계획을 수립한다. 1945년 8월 6일 월요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명령하여 원자폭탄 “리틀 보이”(Little boy)가 히로시마에, 3일 후 8월 9일 “팻 맨”(Fat man)이 나가사키에 투하됐다. 원자폭탄 투하가 결정된 히로시마는 당시 일본군 제2사령부이면서 통신 센터이자 병참 기지였으므로, 일본의 군사상으로 중요한 근거지였다. 원자폭탄을 떨어뜨리고 초기 2개월에서 4개월 동안, 히로시마에서는 90,000명에서 166,000명, 나가사키에서는 60,000명에서 80,000명 정도가 사망했으며, 그중 각 도시 사망자 절반은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당일에 집계되었다. 미국에선 이 사건이 최 단기에 가장 많은 시민을 죽였다고 평가하였고 15%에서 20%가 피폭으로, 20%에서 30%가 섬광화상으로, 50%에서 60%가 질병과 부상으로 죽었다고 보고했다.
사망자들 중 대부분은 일본제국 시민들이었다. 나가사키 원폭투하 6일 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으며, 9월 2일 항복 문서에 사인하면서 공식적으로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렸다. 이 원폭투하로 인해 전후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갖지 않으며, 들여오지 않겠다.”는 비핵 3원칙을 수용했고, 아시아의 일본 식민지들은 자동적으로 독립하게 된다.
한편 영화 오펜하이머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던 핵폭탄 개발에 성공한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점이다. 좋게 말하면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에 대한 이념성향에 대해 증인들을 세워서 검증해 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지만, 종국에는 ‘오펜하이머’를 중요한 포스트에서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보여 줌으로써 미국 사회도 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치다 할 정도의 격론에 가까운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자.
연합국의 승리로 점차 기울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펜하이머’가 개발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됨으로써 일본이 더 이상 손 쓸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전후 사정을 더듬어 보면 둘 다 겹쳤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펜하이머’의 “원자 폭탄”이 세계를 지배하는 부동의 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을 보유하는 나라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우리의 지정학적인 위치는 언제든지 과거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도 ‘핵’ 보유국이 되어야만 잘못된 역사의 물줄기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으며,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