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존엄한 죽음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8월 22일(화) 16:37 가+가-

사람은 대부분 병에 걸려 죽는다.
죽음은 삶의 모든 국면에서 찾아든다. 일곱 살에 죽은 사람도 있다. 99살이 넘도록 장수를 한 사람도 있다.
죽음은 모두에게 온다고 하지만 가까운 사람의 부음을 받으면 한동안 침묵이 되거나 마음 한구석이, 내려앉기도 한다.
한국현대 시인협회 안에서 여러 시인의 임종과 장례식을 치렀다. 문덕수(1928~2020) 선생과 김귀화(1939~2023) 선생이 별이 되었다. 더 오래전이지만 시도반의 고교 은사이며 한국현대 시인협회 권일송(1933~1995) 회장도 가셨다. 신규호(1939~2022)시인도 별이 되었다. 신규호 선생과는 세미나에서 같은 방을 사용하여 밤이 새도록 한국 문단사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지금도 금방이라도 전화를 주실것만 같다.
죽음 앞에는 늘 공간이 있어, 허전한 마음이 된다. 문덕수 선생은 시도반이 사는 은평구의 병원에서 요양하시다 가셨다.
간혹 산책하는 길에 김규화 선생이 요양원을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 늙음과 죽음에 사색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서 김규화 선생마저 별이 되었다.
삼복 더위에 최은하(1938~2023. 8.19) 선생님께서 별밭으로 가셨다. 최은하 선생님과는 보리수 낭송회를 오랫동안 동행하였다. 선생은 직접 사회를 보았다. 발표된 시를 즉석에서 해설도 하였다. 대학로에 품바로 유명한 연극인 김시라가 운영하는 연극센터였다. 이오장 시인은 손수 앰프를 차에 실어나르며 보리수 낭송회에 주축이었다. 인연의 최은하 선생의 부음을 듣는 보리수 낭송회 회원들, 마음 구석이 텅 비워질 것이다.
최은하 선생은 병상 전까지 황송문 선문대 명예 교수와 대학로의 방식 꽃 예술원에서 차를 나누고 점심을 하였다. 선생은 죽음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셨다. 고승들의 죽음에 대하여도 말씀하였다. 고승이 자신의, 죽음의 시간을 아는 비결은 스스로 식단 조절을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마치 고승의 식단 법을 죽음의 지혜처럼 말씀하셨다. 선생의 ’존엄한 죽음‘에 대한 말씀이 귀에 떠나지 않는다.
매미가 여름의 막바지를 알리며 울음소리가 멎는 시간이었다. 한국현대시인협회의 공지 방에 선생의 부음(8월 19일)을 알린다. 아인 슈타인은 죽음에 대하여 무연고자의 죽음, 나의 죽음과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죽음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최은하 선생 부음 소식은 차이가 있었다. 독주라도 한잔하고 싶었다. 마음이 힘들어 성곽길을 한참을 걸었다.
그러면서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알고 싶지만, 알 수가 없다. 어떻게 죽는 것이 제일 좋을까?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수 있을까? 선택할 수 없고 보장도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래도 최대한 소망과 가까운 방식으로 삶과 작별하고 싶다면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2008년 2월이었다. 연세대에서 폐 질환 검사를 받던 고령 환자가 의식을 잃었다. 병원 측은 의학적 사망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했다. 인공호흡기를 대고 혈관으로 신진대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영양을 공급했다. 심장이 멈추면 응급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서 다시 숨을 쉬게 했다. 입원 당시 환자의 나이는 일흔여섯 살이었다. 언론은 이 환자를 ‘김 할머니’라 보도했다. 이 사례는 우리나라 ‘존엄사‘ 논쟁에서 큰 획을 그었기에 오래도록 기억할 가치가 있다.
환자가 소생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가족은 병원 측에 연명 치료 중단을 요청했다. 병원은 거부했다. 의사는 어떤 경우에도 환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최선을 다해 생명을 지켜 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족은 대법원에 응급 심폐소생술 시행을 중단해 달라는 임시처분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고 본안 소송을 냈다.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가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판결을 만장일치로 확정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역사에 존엄사에 대한 첫 판례인 셈이다. 그런데 김옥경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도 201일을 견딘 끝에 2010년 1월 10일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흔히들 이 사건을 ‘존엄사’의 첫 사례라 한다. 정확한 표현은 법원이 인정한 ‘존엄사’의 첫 사례다. 김 할머니는 스스로 선택이 아니다. 만약 내가 김 할머니의 입장이라면 어떤 선택일까?
생명은 존엄하다. 그러나 죽음도 역시 존엄해야 한다. 김 할머니의 가족은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죽음의 존엄을 선택한 것이다. 사람은 혼자의 힘으로 숨을 쉬지 못한다. 김 할머니가 나라면 단 1초라도 빨리 떠나는 존엄을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