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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도착했습니다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8월 15일(화) 16:28 가+가-
인생은 사색이다. 사색은 걷는 것과 보는 것들이 교과서다. 명징한 한 줄의 문장과 책에서도 사색을 찾는다. 아침편지의 주인장 고도원 작가는 책 속, 의미의 한 줄을 500만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아침편지는 30명부터 시작된 것이 500만 명을 넘어섰다. 밑줄의 글은 뭇 사람에게 하루를 여는 사색의 산책길이다. 아침편지 전성기에는 한국일보에 연재되기도 했다. 그만한 가치와 독자의 호응이 컸다는 뜻이다.
세계사는 최근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다. 방송의 다변화가 생겨났다. 유튜버라는 개인 방송국이 손가락으로 꼽지 못하게 생겨났다. 개인 방송은 경쟁을 넘어 상상을 초월(가짜)하는 뉴스를 만들어 낸다.
걸러지지 않은 내용도 있다. 일상의 철학 선생처럼 여행, 고전 책 읽기와 같은 바람직한 면도 있다. 시간이 흐르며 미움과 분노를 전하는 매체가 태반, 불순해 지고 있다.
매체들은 누군가를 미워할 때 미워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최고 인기 강사로 보인다.
보편적인 교육은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미워하지 않은 사회구성원의 방법을 일깨워 준다. 종교도 다르지 않다. 내세를 통한 선한 자의 태도를 전도하고 그 길을 선택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종교는 불신의 대상이다.
대중이 종교를 불신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 스스로가 대중에게 불신을 조장, 만들어 간다.
미움과 분노도 나무와 같이 자라는 것이다. 커가면서 해를 입히는 것도 문제지만 결국 자신과 사회를 파괴하는 일도 담당한다.
‘말’이라는 것은 품격을 지닐 때, 천사의 날갯짓이 된다. 시와 사랑은 동선(動線)이라는 말도 있다.
‘무형의 사랑은 수없이 다가가 형체가 없는 애욕과 애증의 키스를 퍼붓다가 그대라는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고 새벽이면 부끄럽게 돌아선다.’ 이렇듯 글은 시적인 사랑의 표현도 있다. 표현이 아름다우면 그것은 언어의 사색이 된다. 그림의 탄생은 사람의 마음에 사색을 넣어주는 눈짓이다.
인사동에는 화랑들이 줄을 서서 사람의 시선을 기다린다. 그 인사동이 차츰차츰 금은방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림은 엔도르핀(endorphin)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음악과 연극도 다르지 않다. 음악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의 순화를 가져다준다.
뮤지컬과 같은 장르는 수준 높은 위치를 점하는 이유도 그렇다. 화가는 그림에 대하여 말한다. 보는 것만으로 근심 걱정 없어진다. 풍족하고 자유로운 느낌의 그림을 걸어두고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며 감상하면 정신 건강에 좋다.
그림이 행복감을 주는 이유는 값비싼 집기나 의복 등 소유보다는 사랑하는 지인들과 자기 시간을 즐긴다는 희망을 사색하여 주기 때문이다.
행복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돈과 행복의 관계를 조사한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물건을 구매하기(소유)보다 무언가 하는 편(경험)이 훨씬 만족감을 주고, 수입과 상관없이 타인을 위해 돈을 쓸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 사람은 돈이 생기면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는 것, 주로 타인을 대접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이렇게 문화는 긍정의 시간으로 사용할 때 인생이 요구하는 사색의 길을 걷는다.
인생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개인이 소유한 휴대전화는 문명의 혁명을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필요한 정보는 시공을 넘어 받는다. 그 좋은 문명이 우리 인간을 충격으로 치닫게 한다는 모순이다.
뉴스 시대를 사는 우리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매일 쏟아져나오는 뉴스와 가까이하자니 그 물량 공세 앞에 자칫 헤매기 쉽다.
뉴스와 일상으로 만나면서 거리를 두고 검토할 줄 아는 지성이 요청된다. 정보를 자칫 잘 못 받으면 분노와 두려움을 정신 안으로 받는 경우가 된다.
뉴스는 총이나 검이 되기도 하고 마약과 같은 해악(害惡)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사건 사고들이 줄을 잇는다. 초등학교 교사의 ‘억울해서’의 자살, 거리에서 ‘묻지 마’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들은 사색과 무관하지 않다.
그 정서의 사색을 좀먹는 것의 하나가 개인 방송의 무분별한 정보소통이다.
독버섯과 같은 정보는 분노를 조장(초대)하고 민주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는 기능을 우리 몰래 익숙하게 전달해 준다. 뉴스를 선별하는 지혜가 필요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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