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시인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3월 14일(화) 16:45 가+가-

눈이 쌓인 길에만 발자국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에도 엄연한 발자국이 있다.
시인은 아무도 걷지 않는 언어의 길에 발자국을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리고 광장에서 마음을, 저잣거리에서 생각의 발자국을 내려놓고 삶의 앵글을 들이대는 것이다. 니체(1844~1900, 독일 시인, 철학자)는 시인을 가리켜 ‘하나의 문화’라 하였다.
시는 노래가 되고 광포한 인간의 마음과 맞닥뜨리는 숙명의 광장에 서성이는 부류들이다.
그러면서 시는 상처로부터 회복되는 실존주의 길을 마주한다.
인류의 역사가 단순한 무리의 역사가 아니라, 개인들의 삶이 이어진 거대한 기록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도 철학자보다는 시인들의 앵글이 먼저였다.
동양에서는 춘추전국 시대 공자집단(公子集團), 묵자집단(墨子集團) 등의 학술 집단이 있었다.
큰 스승을 중심으로 그 제자들이 모여 형성된 학술 유파다. 선학들의 사상적 행동적 단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시단에는 청록파(1939)라는 동인들이 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시파로써 시의 밭을 일구고, 시의 나라를 만든 자들이다. 흔히 그들을 가리켜 시의 산맥이라 하기도 한다. 같은 시절에 황금찬(1918~2017) 시인과 박화목(1924~2015) 시인이 있다. 황금찬 시인은 설명이 필요 없는 20세기와 21세기를 걸친 한국 시단의 당산나무다.
가곡 ‘보리밭’, ‘과수원 길’ 등의 작시가 박화목 시인도 한국의 문단을 이끈 대들보들이다. 이들과 같이 사진을 남기고 시를 토론 한 시인들은 행복한 문인들이다.
이덕수 시인은 황금찬, 박화목 시인과 매우 돈독한 관계의 시인이다. 이덕수 시인은 장신 대를 나온 신학도다. 황금찬 시인은 이덕수 시인과 찻잔을 나누면서 이 시인은 목회보다 시인의 길이 제 길이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이 시인은 황금찬 시인의 말씀처럼, 목회하지 않고 시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시집을 내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시를 내놓고 시집으로 묶지를 않았다. 시인은 시집을 내지 않는 것은 자신을 시도반으로 ‘아직은’, 이라는 말을 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시집을 내기에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화목 시인은 이 시인의 태도에 시를 보자 한다. 그리고 시 해설을 해주었다. 시집을 내도록 독려와 결단의 용기를 준 것이다.
이 시인은 박화목 시인의 해설을 받아놓고 시인의 시를 만지고 있었다. 결국, 박화목 선생은 이 시인의 시집을 보지 못하고 천국으로 가셨다. 이 시인은 박화목 선생의 발인에서 한없이 죄송한 인사를 올렸다. 선생의 주옥의 시 해설을 시집으로 펴내지 못한 죄송이다.
수많은 시인의 부류가 있다. 겸손이 부족하여 자신의 시가 제일인 양 시집을 용기 있게 펴낸다. 그리고 자신의 시를 스웨덴의 노벨상 수여자들이 아직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생각도 한다. 가상한 용기의 시인들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영락없는 여의도 정치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사진찍기 좋아하고 가슴에 꽃 달기를 좋아한다. 공자 선생은 군자는 가슴에 꽃을 달지 말라는 말을 한다. 공자는 선학의 시를 모아서 시경을 만들었지만, 공자의 독자적인 시집은 만들지 않았다. 그에겐 시학을 겸비한 출중한 학인이지만 감히 시집을 내지 않는 겸손의 학인이다.
이야기가 많이 흘렀다. 이덕수 시인은 시도반과 차를 나눈다. 시집을 내게 되는데 박화목 선생의 해설은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시도반은 박화목 선생의 해설을 넣어서 시집을 펴내도록 했다. 선생이 가신지 8년여 만에 시집을 펴낸 것이다. 이덕수 시인은 시집을 펴내자 먼저 박화목 선생의 영전에 올렸다. 뜨거운 가슴의 눈물을 씻었다. 겸손도 때로는 미덕이 아니다. 이 시인의 <지금 사랑해야겠다> 시집은 정말 따듯한 영혼의 울림이 있다. 그가 시단에 명단을 올 린지 20년이, 넘어서야 겨우 한 권의 시집을 올린 것이다. 이덕수 시인의 시집을 받아든 윤평현 시인은 마치 오래된 더덕을 만난 기분이라는 말을 한다.
이원좌 시인은 고뇌의 시학이라는 한 줄 평을 하기도 한다. 시인의 장모는 시집을 읽으며 밤이 새도록 촉촉한 눈시울로 페이지를 넘겼다. 모름지기 시인의 시집은 세상에 나오면 자신의 시가 아니다. 독자의 호된 평을 받아야 한다. 이제 이덕수 시인의 시는 비바람에 내 던져졌다.
눈부셨던 꽃잎도/ 미련이 없이 지더라/ 황홀했던 순간도/ 바람처럼 가더라/ 고운 빛깔 덧없이/ 낙화 되어 날리고/ 깃털처럼 사뿐히/ 대지 위에 눕더라/ 속절없는 인생아/ 꽃잎처럼 가거라/ ‘꽃잎처럼’ 전문이다. 계절의 순환이 아니라 인간의 경계를 간파한다. 시인의 끝은 지금부터라는 기대다. 시대가 정신적 사상적 자유를 말살하여도 이덕수 시인의 시의 샘은 마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