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비용이 OECD 최고 수준? 해결사는 ‘합의의 기술’!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3년 02월 27일(월) 16:52 가+가-

사회 통합을 위한 ‘합의의 기술’이야말로 국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민주 사회의 최고 가치이자 덕목이다. 사회 통합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적 기구를 비롯한 정부와 모든 국민과의 사이에 철저한 신뢰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은 어쩌면 자연스러우며 건강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가정, 학교, 직장에서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 속에 갈등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동안 숱한 갈등을 동력으로 삼아 사회를 발전시켜 왔다. 갈등이 발전의 ‘성장 통’인 셈이다. 물론 갈등을 잘 관리한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만약 갈등이 장기화되거나 빈번하게 발생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막대한 갈등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관리되지 못한 갈등은 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갈등이 발생했을 때 토론을 통해 해결하고 관리하기보다는, 억누르고 금기시하고 빨리 결론지으려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아주 작은 대립도 방치하게 되고, 순간 참여자가 늘어나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곤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 관리 비용이 1인당 GDP의 27%나 된다는 언구 조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모든 국민이 사회 갈등 비용으로 해마다 800여만 원씩 꼬박꼬박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한 해 국가 예산과 비교해 보면 60퍼센트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갈등 비용으로 낭비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공공 기관, 그리고 여·야 정치 활동만 잘 관리해도 실질적인 GDP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한 마디로 갈등은 곧 우리의 비용인 셈이다.
그렇다면 갈등 양상은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갈등과 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여러 상황을 깊게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가 마주할 미래가 밝지 만은 않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저 출산, 고령화, 저 성장, 양극화, 환경, 교육, 통일 등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중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를 짚어보면 첫째, 경제 문제다. 저 출생 고령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우리는 생산 가능인구 감소로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고, 청년일자리 감소와 3D업종 기피현상으로 뿌리 산업이 흔들리고 있으며, 자산의 양극화와 소득의 양극화, 설상가상으로 나눠 먹기식 지나친 노조활동은 기업가들의 열정을 점차 떨어뜨림으로써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다툼들이 돈으로 해결해야 되는 사회 풍조가 만연되어 관리 비용은 날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셋째, 여?야의 정치 다툼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한 수준일 뿐만 아니라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내로남불을 젊은 후배들이 배울까 봐 염려가 될 정도이다.
그럼 해결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까?
타인에 대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한 ‘합의’를 끌어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2011년부터 OECD는 한눈에 보는 정부 보고서를 통해 회원국의 정부 신뢰도 조사 결과를 발표해 왔으며 한국은 2017년에 24%(32위)를 기록해 하위권에 머물렀었지만, 2019년에는 39%(22위)를 기록하여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개인에 대한 신뢰도 1위는 덴마크였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 1위는 스위스가 77퍼센트로 가장 높았다. OECD 평균이 46퍼센트인 데 비하면 압도적인 수치다. 스위스 국민들이 그토록 정부를 신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투명한 정부 운영과 주민 참여 제도이다. 스위스는 일종의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는 나라이다. 국가나 지역의 주요 정책 현안이 있을 때는 반드시 주민의 의사를 직접 물어 결정한다. 또한 주민 투표제, 주민 소환제, 주민 청구제, 주민 참여 예산제 등 여러 제도가 상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나라이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 작동 원리는 ‘합의’이고, 자본주의 작동 원리는 ‘시장’이라고 이야기한다. ‘합의’는 상호 간의 신뢰에 바탕을 둔다. 다수결에 의한 스위스나 미국식 합의 모델이 있고, 다양한 정치 세력 간의 연정을 통해 합의를 추구하는 독일식 모델이 있지만, 결국 민주 정치는 합의에 기반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갈등들은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들이다. 고령화만 하더라도 노인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 미리 준비해야 할 제도나 시스템 개혁이 절실하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제는 당사자들의 이해가 충돌하기 때문에 합의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 가운데 이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하지 않고서 풀어낼 수 있는 과제들이 거의 없다. 그것도 장기간에 걸쳐 합의와 실천이 필요한 과제들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미래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우리가 합의의 기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