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밥 집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2월 21일(화) 16:40 가+가-

북촌에는 ‘利(이)밥’ 집이 있다. 간판에는 ‘이로운 밥’이라는 부제 같은 설명이다.
한자어인 利(이)는 ‘이밥 집’이 말하는 것처럼 이로움을 준다는 뜻이다. 한글의 동의어인 동리(洞里)는 여러 집이 사는 곳을 말한다. 동리(同利)는 공공의 이익을 주게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글은 같아도 한자어에는 뜻이 다른 경우다. 북촌의 현대사옥의 뒤로 돌아가면 비교적 큰 골목길이 나온다. 광화문 쪽, 100미터쯤 ‘이밥 집’이다. 의자가 열 개 남짓 개 정도의 작은 식당이다.
‘사랑하는 그대들 밥은 먹고 다니나요. 바쁘다는 핑계로 매일 거르지는 않나요. 아침을 거르는 게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라도 되나요.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오늘도 그대들은 각자의 일터로 향하네요.’
‘리폴레쉬 노래의 밥 중에서’라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있다. 의리 의리하고 비까번쩍한 음식점을 두고 사람들은 비좁은 이밥 집에서, 요기(療飢)하는 이유는 뭘까?
궁금하다. 요기의 본뜻은 작은 양으로 시장기를 면한다는 뜻이다. 선비들이 가난하게 한양 나들이를 하던 시절이다. 배불리 먹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허기만을 달랠 정도로 주막에서, 간단하게 요기 한다는 뜻이다. 이밥 집의 식사에 대한, 메뉴는 알 수 없다. 유리창 너머로 보기에는 맛집의 인상을 준다. 손님이 만석이어서 눈으로만 요량(料量)하였다.
우리네는 밥에 대한 가치가 크다. 대충 먹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인식도 있다. 유튜브에서는 먹는 것을 주제로 한 프로들이 많다. 수십만을 넘어서 100만 리뷰를 넘는다. 해외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먹방에 호기심을 보탠다. 먹는 방송을 체험하기 위하여 방문하는 여행객도 있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에서도 먹는 장면이 중요하게 작동된다 하여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에게는 먹는 것에 대한 문화적 요소가 숨 쉰다. 어느 학자는 인정(人情)문화로 해석한다. 온돌방 문화의 한국인은 따뜻한 아랫목에 따듯한 밥을 대접하는 것이 각별한 예우로 여긴다.
여행에서 느낀 서유럽 비즈니스맨들의 점심은 대충이라는 느낌이다. 수분 적은 햄버거나, 토스트들이다. 그것도 마트에서 사 들고 공원 벤치에서 먹는다.
너무나 가볍게 한 끼를 ‘때운다’는 인상이다. 문화적 관점에서 비즈니스맨들의 부분적인 점심시간을 말하는 것이니 오해는 없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의 하나인 ‘오병이어’ 성찬이 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과 산상에서 나눔을 가진 만찬의 스토리다. 오병이어는 인류사의 이벤트며 음식의 중요성과 나눔의 멋진 이야기다. 예수의 행적에는 포도주를 포함한 만찬의 이야기들이 더러 나오는 편이다.
먹는 것의 따뜻함, 중요성을 말한다. 어머니의 손맛과 한국인의 발효음식 이야기는 성서적이다. 오병이어는 단지 육신의 필요,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과 한국인의 나눔이라는 만찬이 버무려진 사람 사는 진리의 참된 모습이다. 거기에는 마음을 전하려는 사랑도 있다. 오병이어가 생명의 양식이라면 한국인의 음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문화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에는 지역 특성의 음식이 독특하다. 어느 나라에도 보기 드문 특색이다.
전라도의 잔치에는 홍어가 빠지면 잔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우스개가 있다. 우스개는 매우 사실처럼 행동으로 옮긴다. 가난해도 부유해도 전라도의 잔치에는 홍어가 주객으로 등장한다. 먹는다는 것은 인정의 확장을 말한다. 어머니의 사랑, 초청자의 마음이 들어 있다.
오병이어 만찬에는 모자람 없었고 넘침이 있다. 열두 광주리가 남아돌았다. 우리의 인심은 늘 넘치는 데 있다. 남는다는 것은 새로운 확장의 의미다. 잔치시간을 넘겨도 늦은 손님에게 먹을 수 있다는 넉넉한 인심이 있다. 유럽이나 동남아의 한인 교회의 특징은 예배 후 점심을 나눈다.
유학 생활, 일터에서 지친 교민들은 김치를 나누며 정을 나눈다. 한국인은 어디를 가도 음식 나눔은 기본이다. 밥은 배부름을 넘어선 정신이다. 옛날 경주 최 부자는 낮 설고 서툰 길을 나서는 사람들에게 나눔의 공양으로 유명하다. 찐빵 가게에서 바깥으로 치솟는 훈김은 한국에서만 호기롭게 보여주는 여유다. 저녁 시간이 되면 시골의 굴뚝에서 나는 연기는 따듯한 밥의 정신이 하늘로 오르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