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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는 물길은 천천히 흐른다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1월 03일(화) 16:36 가+가-
순례길, 돌아 돌아가는 길이 사색을 준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물은 흔들리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맑아지고 깊어지며 깨끗한 물길이 된다. 물은 서두르지 않고 ‘서로가 길’이 되어 간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길과 같다.
새해에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은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주저앉거나 돌아서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지상의 물은 포기를 모르고 흐르는 것들이다. 어느 시인은 흐르는 물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했다.
부암동의 이름이 선명하지 않은 카페에서 우연히 박노해 시인의 시화전 전시회를 만났다. 새해를 맞이하는 시도반에게 한 편의 시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아름답습니다/일직선으로 뚫린 길보다는/산 따라 물 따라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곧은 길 끓어져 길이 없다고/주저앉지 마십시오/돌아서지 마십시오/삶은 가는 것입니다/그래도 가는 것입니다/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생을 두고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박노해의 시 ‘굽이 돌아가는 길’ 전문이다.
시도반은 한참을 시(詩) 앞에서 침잠한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아름답다는 시인의 구절이 청정하다. 한해를 가는 길이 빛나는 길만이 있지 않을 것이다. 어느 때는 돌아가는 길이 생길 것이다. 서로가 마주하며 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서점에서 손흥민 축구 선수의 아버지 손정웅 감독이 걸어온 저서와 마주친다.
손 감독은 28세의 나이로 은퇴한 감독이다. 부상이 원인이다. 스스로 삼류 선수로 은퇴했다고 말한다. 그가 삼류라고 말한 것은 손흥민 아들을 일류를 길러 냈기 때문에 스스로 삼류라는 말을 담대하게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손 감독은 손흥민을 선수로 만들기 위하여 굽이진 삶을 살았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손 감독은 어느 아버지보다, 주저앉을 길목에서도 담대하게 일어선 부모의 덕목으로 보인다. 차가운 컨테이너 잠자리와 피부를 찌르는 함부르크의 추위를 견디었다. 흥민의 축구 행복을 위하여 터지는 울음을 참아냈다. 본인이 삼류였던 사실을 교과서로 채택하였다.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成大業)이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사람이 멀리 보지 않으면 큰일을 이룰 수 없다’는 안중근 의사의 말씀이다.
우리가 멀리 가려면 다짐이 필요하다. 다짐은 죽는 한이 있어도 버티겠다는 정신력이다. 당장 눈 안에 보이는 현란한 개인기와 재간이 아닌 강한 의지와 같은 정신력이다. 손 감독은 손흥민과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6년 동안 명절에도 친척 집을 찾지 않았다. 하루에 여섯 시간의 운동시간을 빼지 않기 위해서다.
주변에서 ‘손부삼천지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맹자 어머니의 맹모삼천지교를 비유한 말이다. 흥민 선수가 프로에서 첫 골을 넣었다. 손 감독은 손흥민 선수가 가진 노트북을 가져왔다. 첫 골의 기쁨과 팬들의 환호에 도취가 염려로 다가왔다.
손 선수가 그것을 보지 못하기 위해서다.
“과거에 발목을 잡히면 미래가 없다”라는 손 감독만의 수심(水深) 교훈이다.
손 감독의 엄지는 오로지 아들 손흥민을 위하여 ‘척’하는 것으로 사용한다. 흥민 선수가 보든 말든 출전하는 운동장을 향하여 양손의 엄지를 척한다. 경기를 끝낸 아들이 나오면 다시 엄지를 척한다. 아버지 손 감독에게 축구 선수는 오로지 손흥민이 존재한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 감독의 길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의 길은 첫째는 꾸준한 반복의 학습이다. 둘째는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 간다. 셋째는 결정적인 기회는 분명하게 붙잡는다.
우리가 새해에 가는 길은 손흥민 아버지의 ‘굽이굽이 가는 길’이다. 새해, 우리 모두의 다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고 아침이면 새싹의 노랫소리가 호루라기를 분다.
가난하다 해서 햇빛의 소망이 건너뛰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새해 소망의 태양은 머리 위에 은빛으로 쏟아진다. 소망의 강렬한 빛은 우리 우리의 손을 잡고 힘차게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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