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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작별할 시간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2년 12월 27일(화) 16:38 가+가-
한 해가 저문다. 그리고 또 안 해가 온다.
2022년의 한 해는 한국인에게 유독, 드라마에 관심이 컸던 해였다 평하기도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재벌 집 막내아들‘이 대표적이다. 방영 시간대가 밤늦은 시간임에도 시청률은 높았다. 분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을 붙일 만한 뉴스 부재로 보는 이도 있다. ‘80년대 군사 정권하에는 스포츠에 관심이 컸다.
정치 뉴스를 보기보다는 스포츠에 국민의 관심이 쏠렸다.
어디엔가 눈길을 줄만 한 것이 스포츠였다는 결론이다. 12월 26일 16회로 막을 내린 ‘재벌집 막내아들’의 최종회는 다소 긴장감이 떨어졌다. 최종회에서 ‘복수는 억울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억울함은 늘 약자의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였다. 어디까지나 작가의 견해다. 작가는 재벌가의 비열한 실상을 그렸다. 특정 재벌가를 그린 것이 아니다. 한국의 재벌가를 드라마 속에 투영시켰다. 비루한 재벌들의 세계를 고발했다. 재벌가에는 남편도, 아들도, 형제도 어느 시간, 적이 된다. 적은 논리의 적이 아니다. 살생을 서슴지 않는 무자비한 적이다. 2022년이 남긴 결과라면 재벌을 그린 드라마와 정치가 뿌려놓은 추한 씨앗이다.
부도덕한 윤리는 한번 뿌리를 내리면 뽑아내기 힘든 잡초와 같다. 드라마 작가의 결론은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우아한 해석을 내려보자.
시도반은 최종회가 막을 내리자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와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부른 ‘타임 투 세이 굿바이’(Time to say goodbye)를 LP에 올린다. ‘안녕이라고 말해야 할 시간/내가 한번 보았고/ 당신과 함께 살았던 나라/지금부터 나는 거기서 살 겁니다/ 당신과 함께 떠날 거예요/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을 타고….’
심금을 울리는 노래다. 한해를 정리하여 주는 안드레아 보첼리와 사라 브라이트만의 음색이다. 노래는 1996년 발표된 이후 전 세계에 2500만 장이 팔렸다. 보첼리는 12세 때에 축구를 하던 중 부상으로 시력을 잃었다. 선천성 녹내장이 있던 눈의 충격은 실명까지 이른 것이다. 굴하지 않고 대학에 법학을 공부하다가 돌연 성악을 배우기로 방향을 턴 한다. 1992년 저명한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눈에 띄었다. 1995년에 사라 브라이트만과 부른 <작별할 시간>이 크게 성공한다. 여행의 문은 새로운 사람을 맞이한다. 이탈리아를 여행 중이던 브라이트만이 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보첼리 천상의 목소리에 감동한다. 브라이트만은 보첼리에 듀엣을 제안한다. 두 사람은 1996년 독일의 영웅인 IBF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헨리 마스케의 고별 경기에서 ‘타임 투 세이 굿바이’를 부른다. 제목과 일부 가사를 영어로 바꾼다.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
이날 판정패를 당하고 링에 주저앉았던 마스케가 천천히 일어나면서 이 노래가 사람들의 가슴으로 달려갔다. 이 장면이 생중계되면서 두 사람의 운명적인 듀엣은 세계인에 가슴의 문을 연다. 2000년에는 한국에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2008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10년 잠실 체육관, 2016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하였다.
한국인들이 보첼리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의 노래에는 한국인의 조용함이 들어 있다. 한국인들은 듀엣의 노래를 좋아한다. ‘타임 투 세이 굿바이’는 손꼽히는 듀엣의 명곡이다.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라는 노랫말이 한국인의 정서에 딱 떨어진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같이 보고 같이 의논하면서 가는 듀엣과 같은 것이다.
깨닫는 것도 과거로부터 깨닫고 타인으로부터 깨닫는다. 그리워하는 것도 상대가 있을 때만이 그리운 것이다. 끄집어낼 수 없는 것은 그리움이 아니다. 그리움은 이룰 수 있음을 전재하는 것이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내 안의 어떤 것들을 채우지 못할 때의 현상이다. 문은 애초에 열리기 위해서 존재한다. 무엇에 의해 문이 열리기 전까지 스스로 열리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깨닫고 기억하고 그리워한 다음에 내 안에 들어찬 관념이 넘칠 때 문을 열고 나가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움도 마찬가지다.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와 느끼고 나의 존재를 알릴 때 그리움의 문이 열리고 만나게 된다. 내가 그리워하지 않으면 절대 좋은 그리움을 만날 수 없다. 내가 행복의 문을 열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들어올 기회를 줄 수 없다.
그래 작별의 문을 열 시간이 왔다. 안녕, 2022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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