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이 증원 전 규모인 3058명으로 동결되면서 다음 단계인 2027년 의대 정원 규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수급추계위)에서 2027년 의대 정원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와 부딪힐 때마다 계속되는 정부의 정책 후퇴로 증원이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일찌감치 흘러나온다.
9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3058명으로 확정됐다.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한 후 올해 모집인원을 1509명 늘렸지만, 1년 만에 증원 이전 수준인 3058명으로 동결한 것이다. 다만 이달 말까지 의대생들이 전원 복귀하는 경우가 전제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기존 정원 5058명(2000명 증원)으로 확정하기로 했다.
2027학년도부터는 의대 정원은 수급추계위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수급추계위에서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정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구성과 권한 등을 두고는 대립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인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산하에 수급추계위를 두려고 했으나, 의료계 반발로 복지부 장관 직속 독립심의기구로 구성하기로 했다. 또 의료계 요구에 따라 추계위 위원 15명 중 의료 공급자 단체가 과반인 9명을 추천하도록 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수급추계위를 복지부 장관 산하에 두면 ‘독립성’을 보장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다. 또 의료계가 사용자 측으로 분류한 대한병원협회(병협)를 의료계 추천 인원에 포함한 것도 문제 삼고 있어 수급추계위 설치 법안이 국회 최종 관문인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와 의료계가 합의점을 찾아 추계위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더라도 2027년 의대 정원을 5058명까지 늘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정부는 지난 2020년에도 400명씩 10년간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실패한 바 있다.
이후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앞으로 5년간 2000명씩 증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올해 의대 모집인원은 이보다 약 500명 적은 1509명 증원에 그쳤다. 이어 내년에는 아예 ‘0명 증원’으로 후퇴했다. 의료계 반발에 매번 무릎 꿇으면서 2년 연속 정부 계획보다 의대 모집인원이 축소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27년 의대 정원 역시 의료계가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관측이 무게를 얻고 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는 “(정부가) 의사들에게 계속 끌려다니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여줬다”며 “의대 증원 없이는 장기적인 (의료 체질 개선) 정책은 할 수도 없는데 엉망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어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은 수급추계위에서 결정하도록 했는데, 의료계가 이제 자기들의 주장이 먹힌다는 것을 알았다”며 “결국 수급추계위도 의료계 입맛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지금 추계위 구성과 인원도 그렇게 만들어 놨다”고 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2027학년도 모집인원은 수급추계위에서 논의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아마도 정원을 하나도 늘리지 못할 것”이라며 “정부가 의사 단체가 반대하는 안을 강행할 동력이 없다. 또 의료계가 과반 들어가면서 숫자가 늘지 않는 방향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짚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사실상 정부가 (2026년 의대 모집인원을) 백기 투항한 것이니 앞으로는 더 늘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의사협회나 전공의들이 (정부를 상대로) 승리한 경험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에 다음번에 또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향후 증원을 위해서는 보다 면밀하게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도 제언했다. 송기만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의대 정원을 증원하는 방향은 맞지만, 이해관계자에 대한 얘기도 충분히 더 듣고 정책을 보다 면밀하게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준영 기자 kjy352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