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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이 있는 곳으로 떠나보자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11월 19일(화) 16:37 가+가-
왜 떠나세요? 우리가 떠나는 이유는 없다. 다만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다. 가끔은 일상의 밖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뭉클’이라는 단어는 누가 만들지 않는다. 떠나보면 뭉클은 거기 있었다.
그렇다면 뭉클은 여행지만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 뭉클은 인간이 살아가는 곳곳에 있다. 레스토랑의 맛있는 음식에도 있다. 우체국의 친절한 직원에게도 뭉클이 있다.
한성대를 가는 길에 자그만 언덕에, 위치한 ‘언덕집’이 있다. 자주 가는 이유는 뭉클이 늘 기다리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연극을 하는 공연장이 있다. 얼굴이 알려진 배우들이 오징어 볶음을 놓고 공연 뒷이야기를 한다.
의자야 15여명 정도 앉으면 차고 만다. 탁자가 딱 네 개만 있다. 그런데도 동네의 사람들은 뭉클이 있다며 자리를 잡는다. 만약 일상에 뭉클이 사라지고 있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일상에 뭉클이 사라지고 있다면 당신은 지금 떠나야 한다고 학인은 충고한다.
학인은 우울하게 지내던 차였다. 여기 전기 전화를 하여도 전화가 끝나면 우울하다.
그래서일까? 영국에는 외로움 부 장관이 있다. 정부는 우울증으로 자살하거나 병에 드는 것이 사회적인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정책이었다. 앞선 정책이다. 다만 외로움 부가 아니라 뭉클 부로 명칭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세포에는 당신이 가까이 오면 눈물이 난다. 바람이 불면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고 비가 내리면 비누처럼 쉽게 녹아내릴 것 같다. 어두워지면 나를 못 찾을까 조바심이다. 살다 보면 어깨는 언덕같이 굽어지는 것이 걱정이고 배는 북처럼 불룩이 모습이 걱정이다.
파울로 네루다는 “나의 마음을 위해서라면 그대의 가슴으로 충분하다”라고 한다. “그대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나의 날개로 충분하고”라는 말도 한다.
바람은 바람의 영혼을 위하여 떠난다. 화관(花冠)에 맺힌 이슬이 다가오면 바람은 발길을 조용하게 지나간다. 알렉산드라 푸시킨은 당신을 사랑했지만, 아직도 당신의 사랑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영혼 속에서 아주 고요히 타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사랑은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푸시킨의 말은 어렵다. 그런데도 멋이 있다. “나는 나를 절망적으로 사랑했었답니다. 때론 질투에 어쩔 줄 모르고 때론 수줍어하면서, 당신을 사랑해줄 다른 이를 찾기 바랍니다”
분명 푸시킨도 뭉클을 위하여 떠난 여행자다. 그도 직장에서 해직을 당한 이후 많은 시를 만들었다 한다. 그래서일까? 학인은 상처 따위 없는 깨끗한 삶은 없다 한다. 사람을 사귀려거든 ‘포스 트윗’처럼 쉽게 붙이고 떼는 멋진 관계가 좋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언제나 떠나고 돌아서는 여행이 아닌가. 어쨌든 시작부터 헤어질 걸 생각하며 ‘포스트잇’ 관계를 만드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설사 상처가 아프고 상처 부위가 너덜너덜 보기 싫게 될지라도 그 사람에 기대어 상처가 아물길 기다리며 또 그렇게 사는 것이 뭉클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하지만, 평론가 콩파뇽은 ‘책 속에 길을 잃는 것’이야말로 진짜 독서의 즐거움이라고 한다. 책을 읽을 때 첫 페이지부터 길을 잃을 듯한 미지의 느낌을 받는다. 고독하게 불안하게 도움받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는 커피를 마시며 디지털 독서와 종이책의 긍정과 부정의 측면을 말했다. 종이에 활자로 쓰인 책의 글 속에서 정신없이 길을 잃게 되는 낭만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이 뭉클이라 한다.
결론은 종이책은 전자책보다 낫지 않을까 한다.
정원의 그림을 잘 그리는 모네는 “사랑처럼 이별은 둘이 하는 거잖아”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꽃은 슬픈 전설이 있다. 그래도 꽃은 아름답다.
요즘은 이별도 문자나 이메일로 하는 사람이 있다. 어차피 이별할 사람이니까 쉽게 정리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뭉클에는 그러한 이별은 없다. 만나는 일만큼이나 이별에도 예의라는 것이 필요하다. 이별을 뭉클로 미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누었던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다.
듣고 보니 뭉클은 슬픔에도 있지만, 기쁨을 만드는 요소들이 더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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