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그리고 한계선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09월 24일(화) 16:28 가+가-

‘수목한계선’이라는 말이 있다. 고산이나 극지방에서 나무가 생존하는 지점의 한계를 일컫는다. 이번 여름의 혹독한 더위를 지나면서 한계선에 대하여 깨닫는다. 그토록 죽을 둥 살 둥 울던 매미가 8월 말에 뚝 그쳤다. 덥지만 매미는 가야 할 한계선은 지키고 있었다.
‘요즘 매미는/ 혁명군처럼 소리부터 지른다/날카로운 마음 털어 내느라/동안거 하안거로 땅속에서 10년 수행하다가/나무 위에 허물을 벗고도/아직도 속 터진 것들이 있어/종일 땡볕에서 땀 흘리며/내 말에 귀 기울여 보라고/더는 억울해서 못 참겠노라고/밤낮 구분하지 않고 소리 지르는가/살아가는 동안 열불이 나는 일들/무릎을 꼬집으면서 참자, 참아내자 하지만/세포 마디에서 일어서는 화를 주체못하는가/조석으로 마음속의 허물을 벗어도/눕혀진 마음 하나 세우지는 못하는가’ 최창일 시 <도시 매미> 전문이다.
올 추석에는 더위가 한계를 모른다. 지난해 같으면 긴 팔을 옷을 입었다. 30도를 웃도는 더위는 추석이라는 계절의 한계를 당돌하게 무시해 버렸다.
하지만 9월의 중순을 넘어서는 21일에는 눈이라도 내릴 양 30도를 웃돌던 날씨는 22도로 내려왔다. 가을의 ‘한계’치를 보인다.
세상에 제일 아름다운 사람은 패배와 상실을 인정하는 것이라 한다. 우리가 자연을 좋아하는 것도 자연의 순응이다. 시간이 되면 자연 안으로 순수하게 응하는 자세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자연이 순응의 자세가 아니다. 아쉽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 존경의 대상은 따듯하고 감성적인 사람들이다. 책을 읽고 존경하게 되고 직접 만나면서 존경을 하게 된다.
학인은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를 존경한다. 시를 공부하는 합평의 시간에 말해주었다. 그녀의 일생은 투병의 연속이었다. 24세 때부터 13년 동안 폐결핵으로 병상 생활을 한다. 그러한 와중에도 글을 썼다. 그녀는 “내 안에 점점 커지는 빛, 그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라고 전한다. 그녀는 1964년 아사히 신문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장편 소설 <빙점>이 당선된다. 문단의 주목 속에 여러 작품을 만들면서 존경받는 작가가 되었다. 카메라로 자연을 촬영하려면 렌즈의 문을 열어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의 마음에 위로의 사람이 되려면 마음의 조리개를 열고 마음의 진리까지 열어두어야 한다. 인생이 캄캄할 때 역시 마음의 조리개를 열어야 한다. 인내하고 기다리면 우리를 위로해주는 희미한 빛들이 모여 인생의 밤하늘을 밝혀 줄 것이다. 우리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더위와 강풍이 불어와 위협을 하여도 한계점이라는 시간은 열리게 된다. 내일을 원하는 스포츠선수는 오늘의 땀방울을 흘리며 이겨낸다.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젠가 그것, 바로 ‘지금’이다. 혹독한 여름이기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여기저기 전화가 걸려온다. ‘오늘’ ‘지금’의 계절이 선물이라 한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그 아픔의 깊이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한다/ 패배와 상실은 어제로 생각하고/ 자신의 길을 열어둔다/ 빛은 열린 창문에 비추고 / 변장하는 축복에 선물한다/
최창일 시 <내 안에 커지는 빛> 전문이다.
인생은 내게 일어난 10퍼센트 사건을 희망으로 반응할 때 90퍼센트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버려야 할 것과 갈고 닦아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집착이나 이기심, 소심함을 버리라 한다. 사실은 그것들은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그것들을 적절하게 갈고 닦아야 윤이 나는 인생이 된다.
추석의 빨간 글씨에 오래된 <화양연화> 영화를 무료로 감상했다. 오래전 극장에서 봤지만, 아무것도 기억에 없었다. 다시 영화를 보는 감상은 달랐다. 1946년에 개봉한 영화다. 감독은 상투적인 대사는 버린다. 흔한 사랑의 빛깔은 생략한다. 인간이 가장 순수해야 할 내면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다.
주인공의 변함없는 옷차림, 상대를 대하는 세밀함이 감독의 의도로 보인다. 피부적이지 않고 단정한 옷차림의 사랑 영화가 이토록 감동적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화양연화(和樣年華)의 뜻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홍콩의 반환기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의 한 줄 소감은 “변화를 시키려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변할 때 아름다운 순간은 만들어진다”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