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두 개의 소중한 단어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06월 18일(화) 16:51 가+가-
‘어머니’ ‘그리움’을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꼽는 것은 나라마다 거의 공통이다. 시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시인들에게 그리움의 시를 만들라면 두말없이 이미 준비된 창고에서 꺼내준다. 그리움은 예술 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영감의 창고와 같다. 가곡이나 대중가요에도 그리움에 대한 소재는 쉽게 만날 수 있다. 언어학자는 한글에서 그리움은 그 어떤 단어보다 아름다운 말이라 한다. 인사동 그림전시회에 나가보자. 그리움의 주제는 빠지지 않는 제재다. 어느 시인은 그림 畵, 글 書과 어원이 같다며 ‘긁는다’ 동사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긁는다는 것은 어떤 사물의 동작을 나타낸다. 뾰쪽함도 들어 있다. 마음을 긁는다는 것은 ‘그리움’의 일이다. 유화에서 그림을 긁는 기법이다. 화폭의 물감을 덧칠하고 긁어내는 일은, ‘그림’이라는 말이 변형되었다. 옛 선비들은 바람이 문풍지를 긁는 소리, 그리운 ‘님’의 소리라, 은유하기도 했다.
그리움이라는 것은 엄격하게 구분하면 현상은 아니다. 단지 실현 가능한 일로 여길 뿐이다. 그리움은 사람에서 중요한 심리적 부분이다. 그리움은 행복과도 괴리가 있다. 행복의 기준은 설렘의 순간이다. 도착한 것이 행복의 순간이다. 바로 앞에 놓인 현상이 행복이다. 행복이 하는 일은 그리움 안의 일일 수 있다. 팔공구詩 동인이 된 양윤이 시도반(詩道伴)이 합평 시를 가져왔다.
‘외로움은 그리움이고/ 그리움은 그리움이겠지//무언가 허전하고 허전할 때/외로움이 찾아오고//무언가 생각이 나고 아른거릴 때/그리움이 찾아오겠지’라는 (외로움과 그리움)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첫 시간 합평의 시를 만들어 왔는데 ‘외로움과 그리움’에 대한 의미를 부자연하지 않게 표현하였다. 외로움이나 그리움의 시는 시를 만든 시인만의 심리가 잠재된 창작이다. 살아온 이야기이며 잠 못 든 시간의 기억이론이다. 개인의 심리적 차원에서 나타난 현상이 기억의 차원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난 일이 그리움이나 외로움의 순간이다.
우리가 그리움이나 외로움은 마치 연애사의 부분이 되는 것으로 통속으로 여길 수 있다. 이어령 선생은 ‘빛’을 찾았다는 것은 집단의 일이기도 하다는 말을 한다. 무턱대고 이어령 선생의 빛의 의미를 이야기하니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빛이란 한사람에게 되찾는 일이 아니라 모두의 빛이 된다는 것이다.
빛이란 광복절(光復節)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빛은 모두의 그리움을 찾게 되는 일이 된다. 그리움은 고향이 된다. 우리가, 통일된다면 고향의 그리움은 집단의 그리움을 맞게 된다. 결국, 그리움은 한 사람의 잠 못 이루는 언어가 아니다. 빛은 마음대로 책을 읽는 밝은 시간이다. 광복이나 통일은 실제로 빛과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로 그리움으로 확산 인용되거나 집단이론이 된다.
아기는 엄마의 목소리를 그리워한다. 일정한 시간을 벗어나면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불안하게 된다.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그리움과 어머니의 단어를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꼽는 것은 다분히 인간의 본능과 같다. 심리학자 대니얼 스턴은 정서조율이 ‘강도 intensity’ ‘시간 time’ ‘형태 shape’의 세 가지 차원에서 일어난다 주장한다. 상호주관성은 두 주체가 인식의 공통점을 가진다.
철학적 개념이다. 철학적 개념이라 하니, 어렵게 생각된다. 대니얼의 이론은 상호주관성이 형성되는 것은 인간이 처음부터 그렇게 발달 된 인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남을 말한다. 아기와 엄마의 상호작용은 그리움을 세포로 가지고 살아가는 본능이다. 사람이 ‘어머니’ ‘그리움’의 단어를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인식하는 것은 심리적 자연스러움이다. 사람이 똑같은 정서를 느낀다는 것은 경험의 인지적 상호주관적이며 원초적 형태다. 그리움과 같은 것은 무형의 정서조율이다. ‘그리움’ ‘어머니’의 두 단어를 아름다운 단어로 꼽는 이들은 정서적으로 봄날의 물기 머금은 파릇한 새싹의 사람이 분명하다.
‘그리움’ ‘어머니’! 는 가장 높은 산, 언어 준령(峻嶺)이다.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