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공의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4년 04월 10일(수) 16:40 가+가-
진나라 진왕 때의 일이다. 수상 자리에 있던 기해가 나이가 많아서 물러나게 되었다.
왕은 그에게 후임 수상을 천거하도록 했다. 그때 기해는 평소 자신의 정적이었던 해호를 추천했다. 왕은 깜짝 놀라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어찌 그를 후임 수상으로 추천하는가?”라고 물었다. 그 말에 기해는 “왕께서 신에게 물은 것은 이 나라의 수상될 재목이 누구냐는 것이요, 신의 원수되는 이가 누구냐를 물은 것이 아니므로 신은 왕께서 물으신 뜻에 합당한 자를 추천한 것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해호 이외의 적임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기해는 “그다음은 오가 적임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은 다시 한번 놀랐다. 이유는 오는 기해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기해의 아들 오는 당대 최고의 재상감이었다. 기해는 자신의 이익이나 사적인 감정 없이 공의 만을 생각하고 충언을 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왕은 기해의 공평 무사에 탄복하고 기해의 조언과 충언을 훗날에도 수용했다고 한다.
어느 나라의 왕이 새로운 법칙을 제정하여 공포하였다. 왕은 새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비롯하여 누구든지 벌로 두 눈알을 뽑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관원들이 그 법을 어긴 범법자 한 사람을 잡아왔다. 잡혀온 사람은 다름 아닌 왕의 아들이었다. 왕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백성들은 범법자가 단 하나밖에 없는 왕의 자식이기 때문에 그의 눈알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왕은 자신의 아들의 죄를 특별히 묵인해 주면 백성들이 법을 어길 경우 처벌할 명분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며칠을 고민하던 왕은 결국 아들의 눈 한쪽과 자신의 눈 한쪽을 뽑았다. 아들의 한쪽 눈은 사사로움보다 공적으로 공의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고, 자신의 한쪽 눈은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 일은 백성들에게 공의에 대한 중요함과 왕의 지혜로움을 일깨워 주었고, 왕의 아들 또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해서 왕은 공의와 사랑을 모두 완성할 수 있었다.
중국 춘추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제나라에서 노나라를 정복하려고 이 마을에도 쳐들어왔다.
한 여인은 한 아이는 품에, 한 아이는 손을 잡아 이끌며 난리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적은 점점 가까이 쫓아왔고 두 아이를 데리고 도저히 빨리 뛸 수 없던 여인은 한 아이를 포기하기로 한다.
그렇게 여인은 안고 있던 아이를 땅에 내려놓고 다른 아이만 데리고 뛰었다. 일반적으로는 안고 있던 아이를 데리고 가야 빨리 도망칠 수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결국은 적의 장군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조금 전에 여인이 아이를 버리는 장면을 보았던 장군은 그녀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품에 안고 있던 아기는 내려놓고 손목 잡고 있던 아기를 데리고 도망을 쳤느냐?” 여자는 조용히 설명했다. “내가 품에 안고 가던 아기는 내 아이요, 손목을 잡고 가던 아기는 내 형님의 아이입니다. 난 내 아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은 사적인 사랑이고, 형님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공적인 의입니다. 의를 버리고 사적인 사랑을 택하여 형님의 아이를 버리고 내 자식을 구원한다면 나는 좋겠지요. 허나 그렇게 한다면 우리 집안 꼴은 어떻게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나라 꼴은 또 무엇이 되겠습니까?” 제나라 장군은 크게 감동하여 말했다. “의를 아는 여자가 있는 도성은 쳐들어갈 수 없다. 의가 있는 나라는 공격하지 못하는 법이다”라며 철수를 했다고 한다.
누구나 마음에 정의와 공의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결코 누구나가 아니다. 언젠가부터 정의와 공의를 지키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만 같은 오해를 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히 살펴보면 우리의 삶에서 질서와 미덕을 세워주는 것은 정의이다.
앞서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듯이 나의 사적인 이익과 욕심을 위한 선택이 결코 나 자신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의와 공의에 입각한 선택이 나에게 더 값진 결과로 돌아오게 됨을 알 수 있다. 생명을 살리기에 이른다. 정의가 평안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마음에 품고 있는 정의를 따라 사람답고 의롭게 살아가길 바란다.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