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수혈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4년 02월 28일(수) 17:02 가+가-

오래전 다양한 의학의 발달로 많은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이 생겨났지만 혈액에 관한 부분은 지식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1818년 런던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블런델에 의해 첫 수혈이 시행됐다.
수혈이란 과다 출혈이나 백혈병 등의 이유로 부족해진 혈액의 혈구와 혈장 성분 등을 타인으로부터 공급받아 보충해 주는 과정을 일컫는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혈액형 분류를 규명해 주기 전까지 수혈은 죽음과의 도박이었다. 과거에는 다치거나 치료를 진행하는 중에 너무 많은 피를 흘려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의사들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송아지나 염소 피를 수혈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고통 속에 죽어갔다. 특히 임신부의 22%가 출산 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과거 의사들은 이런 위급 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의 하나로 다른 사람의 피 나 송아지, 염소 피를 수혈하기도 했는데, 많은 사람이 시커먼 오줌을 싸며 고통 속에 죽어갔다. 부검해 보면 핏줄 속에 피가 뭉쳐있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혈액형이라는 개념이 없이 수혈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재수 좋으면 살고, 재수 없으면 죽었다.
1900년 카를 란트슈타이너는 서로 다른 피를 섞으면 적혈구가 뭉쳐 덩어리를 이루는 현상을 발견, 사람의 핏속에는 항체 반응을 일으키는 서로 다른 항원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항원은 자기와 다른 물질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인 면역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분자다.
외부에서 항원이 들어오면 항체는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해 생성된다. 그중 혈액형 항원과 항체는 태어날 때부터 각각 적혈구의 표면과 혈장에 존재한다. 자신이 어떤 혈액형 항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혈액형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A형 항원을 가지고 있으면 A형, 아무 항원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O형이다.
이들은 수혈자의 몸속에 존재할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수혈을 통해 타인의 혈액형 항원이 몸속에 들어오는 순간 수혈자의 혈액형 항체와 만나 ‘항원-항체 반응’을 일으킨다. 이 반응은 주로 적혈구의 응집으로 나타나 혈액 순환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이 때문에 혈액형 항원과 그에 대응하는 항체의 존재 여부, 즉 혈액형은 수혈의 성공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1901년 혈액형을 A형, B형, C형(후에 O형으로 변경)으로 분류했고, 1년 뒤 그의 제자들이 AB형도 찾아냈다. 그의 발견이 1955년 이후 약 11억 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추산도 있다. 란트슈타이너는 이 공로로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그렇게 혈액형에 관한 연구가 시작됐다.
이러한 항원-항체 반응을 예방하기 위해 시행하는 검사가 바로 ‘수혈 전 검사’다. 요즘은 헌혈 시 사전 헌혈기록카드 작성과 문진, 기본검사 등을 통해 헌혈자의 안전과 위험도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부적합자 판정을 받으면 헌혈할 수 없으며 건강한 마음과 건강한 신체를 가진 사람만이 헌혈에 동참할 수 있다.
수혈 시행 초기에 병원은 피를 사고파는 매혈을 통해 수혈에 필요한 혈액을 수급했다. 하지만 각국 적십자혈액원은 생명윤리 등의 이유로 매혈을 폐지했다. 이때부터 혈액 수급은 건강한 사람이 자신의 혈액을 무료로 제공하는 헌혈로만 이뤄지게 된다. 우리나라 또한 1975년 10월 이후에는 혈액 수급을 헌혈로 국한했다.
즉, 헌혈은 누군가의 의지와 희생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헌혈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아직 혈액을 대체할 인공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혈액을 자급자족하기 위해서는 연간 약 300만 명의 헌혈이 필요하다고 한다.
피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치만 알고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면 의미 없다. 같은 혈액형을 수혈받지 못하면 죽는 것처럼 혈액이라고 무조건 다 나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생명의 가치는 피 외에도 여러 가지에 있다. 하지만 그 생명에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 스스로 생명을 영위해 갈 수 없다. 그것은 몸과 마음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의 손길과 수혈을 통해 신체의 병이 치료가 되듯이 마음도 다른 이에게서 흘러 받는 정보와 마음으로 치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