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좋은 저녁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02월 27일(화) 16:51 가+가-

바람은 혼자서 부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태양의 에너지들이 함께하는 것이 바람의 탄생이다. 바닷가에 사는 어부는 눈뜨면 바다의 수면을 본다. 수면에는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보아도 어부는 바람이 파도에 다녀간 소식을 알게 된다.
바다의 성웅이라 불리는 이순신 장군께서도 일어나면 파도에 바람을 보았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파도의 기분을 기록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파도의 기분을 안다는 것은 매우 시적이다.
천재 시인 중 한 분이라는 미당은 ‘바람의 팔할이 나를 키웠다’라는 말을 남겼다. 바람은 현상의 바람과 자연 안의 바람, 시인이 은유하는 바람은 다르다.
미당이 말하는 바람은 세상사 시끄러움도 들어 있다. 비극적인 일이 자꾸 생기는 현상들. 자기 뜻과 상관없이 생기는 인간사다. 미당은 그 역풍의 바람도 사람을 키우는 현상으로 직유 한다. 들판의 풀과 나무들이 바람에 의해 몸을 털어내고 세수를 하거나 병충해를 날려 보낸다.
미당은 자연 현상을 자신의 고달픈 인생사와 은유하였을 것이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세풍이 심한 일제 강점기였다. 어느 가수는 ‘바람’이라는 노래로 일생을 먹고 산다는 진담 반 농담 반의 이야기를 한다. 전도서 11장에서는 “바람만 살피는 자는 씨 뿌리지 못하고, 구름만 살피는 자는 추수하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바람의 비유가 수많은 생각을 키워준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메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이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시 전문이다.
백석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혼자 기거하면서 떠오른 상념을 흰 바람벽으로 은유한다. 바람벽의 사전적 의미는 방의 둘레다. 시인은 흰 바람벽을 바람을 막는 벽이라는 의미를 진술한다. 화자는 바람벽을 통하여 온갖 쓸쓸함을 이미지화한다. 십오촉의 희미한 백열등은 그 쓸쓸함의 깊이를 더한다. 시인에게는 불빛도 지쳐 초라해진다. 그것은 감각으로 보는 벽의 바람이다.
불빛이 비치는 것을 ‘내어 던지고’라고 표현한 것은 불빛의 초라함을 강하게 표현한다. 백석은 흰 바람을 통하여 불빛이 광채를 띠지 않고 내어 던지는 것으로 전락하는 현상을 그려간다.불현듯 흰 바람벽에 어머니의 영상이 비친다. ‘그런데 이것은 어인 일인가’ 의 놀람은 세상에 혼자만이 덜그렁 놓여 있음을 강렬하게 전한다.
1991년 유하 시인은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시집을 펴내며 시단의 바람을 일으켰다.
시인은 자연이 ‘비어 있음’의 공간이라면 하나의 ‘채움’의 자리로 보았다. 때는 바야흐로 4·19의 학생의거, 5·16의 군사 쿠데타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압구정동은 황량한 들판에서 아파트가 들어섰다. 유하 시인이 보는 압구정동은 인간의 욕망은 허(虛)를 보존하는 쪽보다는 허를 채우는 쪽으로 보았다. 채움의 욕망은 막힘의 결과를 만들었다. 차가 막히고 사람이 막히고 숨이 막히는 공간이 된다. 시인은 이 시대를 막막함으로 보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사람의 도시를 건설했으나 그 의도와는 늘 다르게 바람은 불었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늘 성난 얼굴이다. 병원은 진료가 아니라 환자를 만든다. 자동차가 사람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막고 서있다. 시인은 인간이 만든 바람이 무섭게 보였다. 시인은 이러한 현상을 무서운 작위(作爲)처럼 보였다.
‘바람 부는 날은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영화화되었고 반향은 컸다. 시인이 보내온 1991년 시집의 값은 2500원이었다. 무던하게도 변모된 시간이 흘렀다. 곽재구 시인은 ‘바람이 좋은 저녁’ 시에서 바람은 그물을 치지 않는다는 낭만의 시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 속에는 바람은 그저 낭만만은 아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쉬어가며 천천히 부는 바람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