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을 드립니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02월 20일(화) 16:47 가+가-

시집을 펴내면 동료 문인께 시집을 올린다.
혜람(惠覽), 청람(淸覽), 께, 선생님, 시우 등으로 서명한다. 드물게 청정(淸正)이라 쓴 작가도 있다. 청정은 선비들이 그림이나 시가 담긴 붓 서예 글을 선물로 주면서 쓰는 글이다. 청정이 뜻하듯 ‘정갈한 마음으로 바르게’ 올립니다. 라는 뜻이다. 선비들이 올리는 ‘최고의 표현’이다. 옛 선비들은 그림이나 서예 붓 글을 선물 받으면 자신의 집에서 기르던 오리나 닭을 다시 선물로 올리기도 했다. 가격을 떠나서 정성이 담긴 선물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 보면 동문수학하는 벗에게 학문의 정진을 바라는 뜻에서 벼루나 붓을 선물 하기도 했다. 임금은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신하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하다는 고마움도 같이 전했다. 선물은 가치의 중심이 아니라 뜻이, 담긴 것이다. 옛 드라마에서는 사랑하는 연인이 서울이나 먼 곳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면 털실 목도리를 손수 떠서 선물하는 장면도 나온다.
시대의 흐름 속에 선물은 뇌물이 되었다.
그 뇌물은 승진이나 인사 발령, 사업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되었다. 국회는 김영란법을 만들어 선물 가격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옛 선비들의 기준에서 보면 기가 막히는 선물의 막장 형태일 것이다.
대학에서 교수를 뽑는 광고에는 초빙(招聘)이라는 문구를 사용한다. 초빙은 예를 갖추어 ‘선생님을 우리 대학에 오실 것을 요청합니다’라는 뜻이 담긴다. 대기업에서도 초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채용이라 한다. 오직 대학에서만 ‘초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상아탑의 우아다. 그렇게 초빙을 한다 하면서 대학의 초빙 현실이 더러는 부정의 경우도 있었다. 돈이 오고 가는, 경우다. 모든 대학의 경우는 아니다. 일부 대학의 쑥스러운 단면을 이른다. 어느 대학 총장 비서실장에게 고교의 후배가 집으로 찾아왔다. 시간 강사를 하면서 보낸 세월이 5년이란다. 이번에 선배님의 대학에 초빙의 서류를 넣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인사 절차는 대다수가 학과 중심으로 심사한다. 총장에게 3배수의 인원을 올린다. 마침 비서실장의 후배는 3배수 안에 들었다.
총장에 지나가는 말로 후배가 3배수 안에 들었네요. 우연인지 총장은 후배를 교수로 초빙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후배는 선배가 작용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가난한 후배는 참기름 두 병을 들고 찾아왔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비서실장은 참기름 한 병을 총장에게 드렸다. 총장은 신기한 선물로 생각했다. 값이 나가는 물건도 아니고 자그마한 소주병에 비닐 뚜껑의 참기름 선물이다. 총장의 얼굴을 보니 매우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진실한 교수가 학교에 왔다는 느낌으로 읽혔다. 일주일 후 후배는 다시 찾아왔다. 방을 구하려니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얼마의 돈을 융통하여 주면 봉급을 타서 나누어 갚겠다는 것이다.
요즘 선물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 분위기다. 명품 가방이니 파우치니 하는 단어를 가지고도 여론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地心)은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가운데 하나다. 맹자는 이와 함께 남을 측은하게 여기고 사양할 줄 알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사람이라면 지녀야 할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가르쳤다. 언제부터인가 잘못을 저지르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오히려 잘못을 저지르고 큰소리를 친다. 옛 선비들이 주고받은 선물의 뜻은 기억하는 이 없다. 시인들만이 시집 한 권에 청정(淸正)이라는 문구로 시집을 올릴 뿐이다. 별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청정한 빛이다. 별은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다. 들어온 별은 갚을 요구하지 않는다. 같은 시대 같은 별을 보면서 어떤 이는 감정이 말랐다. 수치심이 없는 것은 수치심이라고 성 아우그티스는 <고백록>에서 꾸짖었다.
참기름 한 병을 선물한 교수는 지금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