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마주하는 방법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4년 02월 07일(수) 16:32 가+가-

헤리 로더라는 가수가 있었다. 그는 공연 중에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도 평소처럼 노래하며 공연을 마쳤다.
그리고 공연이 마치자마자 아들의 시신이 있는 야전병원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그는 아들의 시신을 붙들고 우는 대신, 그곳에 있던 군인들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훗날 잡지사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의 죽음이 슬프지 않기 때문에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고난을 맞는 인간의 태도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비관해서 좌절하든지, 술을 계속 마셔서 파멸하든지… 저는 하나님께 저의 슬픔을 맡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놀라운 위로와 힘을 공급해 주셨고,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슬픔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슬픔을 오히려 다른 사람을 향한 위로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미국의 시인인 롱펠로는 어느 날 아내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달려가 보니 그녀는 촛불로 일을 하다가 실수해 옷에 불이 붙었고 심한 화상을 입었다. 결국 그녀는 그 화상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얼마 동안 롱펠로는 그때의 무서운 경험이 생각나 몸서리쳤고,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과 그 부재로 인한 부담이 엄습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있기엔 그에게는 그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린 자식 셋이 있었다. 그는 이제 자식들에게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 노릇을 해야 했다. 그는 아이들 손을 잡고서 함께 공원을 걸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같이 놀았다. 또 아이들을 위해서 단테의 ‘신곡’을 번역했다. 그는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거기에 온 힘을 다하여 살면서 자신의 비탄을 잊어버렸으며 마음의 평화를 회복했다.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얻어냈다.
서아프리카 한 부족에는 이런 전통이 있다. 마을에 비극적인 일이 있거나 어려움이 찾아오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춘다. 그들은 큰 슬픔의 끝자락에 있는 당사자를 중심에 세워 젬베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마을을 한 바퀴 돌게 이끌며 슬픔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한다고 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그의 슬픔에 공감해 주듯이 함께 젬베 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위로한다. 그들은 그렇게 큰 슬픔을 춤으로 승화시킨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슬픔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조건으로 바뀌어 있다. 그래서 젬베는 슬픔의 소리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닌 기쁨의 소리를 전달하는 도구이다. 그래서 젬베 리듬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기쁨이 된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들으면 더 슬퍼지기 때문에 듣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반대이다. 차라리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껏 눈물을 흘리며 철저히 슬퍼하는 게 낫다. 그래야 비로소 슬픔이 쏟아져 나와 바닥을 보인다. 그렇게 끝이 나야 그 슬픔이 극복될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무엇일까? 슬픔으로 인하여 눈물을 쏟은 다음에 짓는 미소가 가장 맑고 아름답다. 그렇듯 진정한 기쁨은 슬픔을 걷어낸 다음에 온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동반자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내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알게 되어 대비하고 보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픔과 절망을 겪지 않은 사람의 삶은 싱겁다. 그래서 누리는 행복도 싱겁다. 오히려 슬픔과 절망을 이겨내고 얻는 행복은 그 크기와 질이 크고 아름답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결코 슬픔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슬픔 후에는 슬픔의 크기와 비례하는 위로가 온다. 그걸 가슴 깊이 받아들이면 희망이 생겨난다. 그것을 알면 고통이 와도, 슬픔이 와도 두렵지만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