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버리기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01월 30일(화) 16:37 가+가-

모르고 사는 게 속 편한 세상. 프렌치프라이라고 불리는 감자튀김은 벨기에가 원조다.
그 튀김을 먹으며 벨기에가 원조라는 것을 알고 먹는 이는 없다. 모르고 먹어도 불편한 것도 없다. 무식하지도 않다. 유럽에서는 축구가 일상의 스포츠처럼 대중적이다. 2002 한국 월드컵에서 응원단이 외친 ‘붉은 악마’라는 구호도 벨기에 대표팀 중 하나의 이름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이곳은 스머프의 고향이자 틴틴Tintin의 모국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벨기에는 초콜릿과 와플처럼 부드럽고 달콤하며, 맥주처럼 깊고, 시원하며 감자튀김처럼 질리지 않고 축구처럼 스펙터클함과 동시에 스머프, 틴틴처럼 귀엽거나 모험심이 강한 나라다.
이 같은 멋진 내용을 모르고 먹거나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 알고 있는 것이 건강을 해친다. 자다 깨어 휴대폰에 눈이 간다.
이런저런 유튜브를 본다. 잠을 설친다.
낮이 되면 피곤하다. 현대인의 일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병으로 본다. 중독으로 보기도 한다. 병도 아니고 중독도 아니다. 병이나 중독은 건강에 청신호가 올 때를 말한다.
그저 이러한 것은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다만 유튜브를 보지 않아도 시대에 뒤떨어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넘치는 정보를 잡스럽게 볼 뿐이다.
사안에 대한 인식도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던 날 나라에 큰 병고가 날것으로 알았다. 탄핵으로 경제가 외교가 미치는 일이 지대할 것으로 알았다. 지나고 보니 그 탄핵이라는 것도 정치권의 일이었다. 개인적인 일과는 아무런 피해 없이 흘러갔다. 대통령을 안타깝게 여기는 지지자들은 화장실 벽 낙서에 박근혜 탄핵의 잘잘못을 지적했다.
탄핵 자를 응징해야 한다 했다. 그 또한 지나고 보니 국민의 개개인과는 특별한 관련은 없었다. 정치사의 서사로 주춤주춤 현상일 뿐이다. 박근혜는 자신을 탄핵하고 감옥에 보낸 자들과 만나서 밥도 먹고 인터뷰도 하고 큰 집에서 우유 자작 지낸다. 모를 일이다. 친구 간에 종교문제를 가지고 다툼을 한다. 불교가 어떻고 기독교가 어떻다는 등 말싸움을 하기도 한다. 옆에서 바라볼 때는 내용도 없다.
그 친구들이 스님도 아니고 신부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그곳까지의 입씨름에 불과하다. 좌와 우의 논쟁도 그렇다. 쥐뿔도 좌와 우에 대한 역사도 모르면서 싸운다.
한때는 용공이라는 말이 유행인 적이 있다.
용공은 불온한 사상자를 말한다. 싸우는 당사들은 용공 자들도 그렇다고 국정원의 직원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아는 것까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한다. 근자에 들어서는 북한의 동조자라는 말을 한다. 말하여 간첩이라는 것이다. 간첩이라면 싸울 필요가 없다. 경찰에 112에 전화를 걸어서 신고하면 된다. 그리고 큰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신고를 않는 것을 보면 간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알지 않아도,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행동을 하고 산다.
마치 그것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명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 사람을 보면 나라 사랑도 그다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라 사랑이란 말이나 사실이 아닌 뉴스를 전하는 일이 아니다. 지하도를 오르내리며 질서를 지키는 것도 나라 사랑이다. 질서를 지키지 않을 때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일으킨다. 바쁘거나 걷고 싶으면 층계로 걸으면 된다. 굳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밀치며 분주할 필요는 없다.
시간이 흘렀지만 ‘웃으면 복이 와요’ 프로가 있었다. 정말 복이 오는 걸까?. 정말 웃는 것만으로 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우리는 그 말이 복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속는 셈 치고 웃어본다. 웃었다고 우리는 손해는 없다. 바보도 아니다.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복은 내 것을 만들 수 없다.
다만 웃음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웃으면 복은 오지 않지만, 건강이 좋아진다는 의사의 소견도 있다.
손뼉 칠 때 떠나라는 말도 그렇다. 대표적인 사람이 히딩크다. 그는 월드컵이 끝나자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났다. 지금도 히딩크의 신화는 멋지게 기억을 한다. 정치권은 어떤가. 죽는 그 날까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심보의 사람들이 지탄받는다. 유독 정치권만이 히딩크와 같은 사람이 드물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비교라 한다. 반대말은 불만이다. 우리는 살면서 행복의 반대말도 모르면서 아는 체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아도 좋다. 그렇다고 독서까지를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쓸데없는 잡스러운 상식을 꺼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잡’에 너무 관심이 크다. 잡념, 잡음, 잡탕, 잡담, 잡범과 같은 ‘잡’을 붙들지 말고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