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이 없는 새해를 위하여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4년 01월 02일(화) 16:50 가+가-

“거룩한 대립이 있나요.” 학인의 물음이다.
거룩한 대립은 분명히 있다. 등산가가 이산 봉우리와 저 산봉우리에 허락을 받지 않고 활발하게 넘나드는 것과 같다. 대립이란 이렇게 자유 함이 넘나드는 것이다.
서로의 인정이 없는 자유는 없다. 평온이 없는 열정은 냉담이다.
한쪽만을 고집하는 것은 유익한 대립이 아니다. 한쪽으로 치우쳐 그쪽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은 독선이다. 독선적인 사람은 자기 아닌 한가지 선(善)을 고집하는 것이다. 그는 혼자만의 고독이라는 선(善)을 찬양하는 것이다. 자신의 독선, 일관된 의지를 찬미하거나 주장하고, 스스로 옳다 여기며, 자기 자신과 자기 근방의 사람들만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한 사람은 자신이 정신의 불구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조화는 자기에게 없는 특성을 존중한다.
자기가 믿는 선을 스스로 영화롭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선을 존중하는 것이다.
당당한 토론은 상대를 인정한다. 상반된 의견이라도 존중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펼친다. 토론에서 비아냥으로 흘러간다면 그것은 균형을 잃어버린 토론으로 갈 길을 잃게 된다.
따뜻함과 화려함, 확산력과 집중력, 부드러움과 강함, 이러한 대립은 울림이 되는 악기와 같다. 토론에서 비유를 들면서 상대를 이해시키는 노회찬이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그가 역사의 돌멩이에 죽었을 때 손석희 방송인은 진실로 눈물을 보였다. 우리 시대의 참신한 토론의 명수를 잃었다며 애석하였다. 음악에서 강약이 있다. 무슨 악기나 그러하겠지만 대금과 바이올린은 강약의 대표적인 악기다. 흐르는 선율의 집중력과 강한 힘이 없으면 음은 뭉텅해진다. 맥이 빠지고 만다. 반대로 따뜻한 선율의 확산력과 부드러움이 모이면 그것은 하모니가 된다.
우리의 삶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지는 않은가?. 모순 없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편협이다. 생기 없는 삶은 작위적이다.
그리고 밋밋하다. 세상과 사람은 모순에서 참신을 만든다.
악기의 생명은 공명으로 고유의 음색을 만든다. 공명이 없는 악기라면 그저 제목이 없는 소음에 불과하다. 다양한 공명이 모이면 그것은 악기의 공명 이력을 갖는다. 사람도 그렇다. 정신적 공명이 그 사람의 됨됨이 인격을 만든다. 지도자에게는 전체를 아우르는 공명이 필요하다. 그것을 우리는 민주적 사람이라 한다.
자기를 존중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이 있다. 자기를 존중하지 못하면 성숙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자기를 존중하는 것은 혼자만이 시간일 때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성숙한 사람, 또는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 한다.
내면의 성장은 나무와 같다. 처음에는 씨앗이다. 씨앗에서 발아되듯 싹이 난다. 그 씨앗은 스스로 성장을 하지 못한다. 자연의 바람과 수분이 씨앗을 성장하게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혼자만이 살아갈 수는 없다.
주변의 사람과 나눔의 시간이 될 때 성숙한 사회의 일원이 된다. 주변인을 인정하는 사람은 생명수와 같다. 싹이 자라는 것은 주변인과 자연스러운 대립의 성장 속에서 커나가는 것이다. 자기 안의 두려움이 있다면 나무가 수분을 먹지 못하여 성장하지 못하듯 커나가지 못한다. 자기 안의 두려움은 스스로는 물론 사람들과 믿음 안에서 이루어진다.
과한 자기 자랑과 두려움이 우리를 가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싹을 내지 않는 나무는 결국 혼자만의 세계가 된다. 내 속에 내가 갇혀 상대의 허물만을 본다면 그것은 최고의 실수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해가 뜨면 마르게 된다고 성경의 마태복음은 전해준다.
새해에는 건강한 대립 속에 나를 성장 시키는 시간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넉넉한 품의 옷과 같이 말씀의 공명, 악기가 될 것을, 희망해 본다. 아름다운 대립은 시대를 만들어간다. 좋은 대립은 바이올린과 같은 선율을 만든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악기들이 울려 퍼지는 새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