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 감독의 겨울 이야기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3년 12월 12일(화) 16:42 가+가-

신상옥(1926~2006) 감독이 별이 되며 유작을 남겼다. 2023년 1월 개봉된 <겨울 이야기>다.
신 감독의 아들, 조동관 감독이 편집을 완성, 극장에 올렸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세계 영화계를 움직이는 인물이라면 그 밑 거름에는 신상옥 감독이 있었다.
신상옥 감독은 별이 되기 전 왜 <겨울 이야기>에 메가폰을 잡았을까. <겨울 이야기>는 일본의 작가 ‘아리요시 사와코’ <황홀한 사람> 소설이다. 1972년에 발표된 소설은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건강했던 사람도 나이는 든다.
나이가 들어가는 인간은 어떻게 변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늙은 부모가 노인병으로 온 가족을 힘들게 한다. 자식은 병든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경제적 육체적 어려움을 감수한다.
그리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그 자식들이 노인이 되어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삶을 절망하게 만드는 악순환이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개인을 뿌리부터 조금씩 무너뜨린다.
<황홀한 사람>의 소설은 모두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을 작품으로 우리를 흔든다. 신상옥 감독이 어느 나이에 소설을 대했는지는 모른다. 그도 나이듬에 많은 번뇌가 있었다.
구약 성경보다 먼저라는 <길가메시 서사시>도 삶과 죽음에 대하여 깊은 성찰의 저서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3000년경 작품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우룩을 다스린 위대한 왕 길가메시의 이야기다. 그 안에는 인간 문명에 항거하는 투쟁과 우정, 사랑, 모험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길가메시는 시인이면 읽어야 할 필독서인 <호메로스 서사시>보다 적어도 1천 5백 년은 앞선 것이다. 길가메시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비극적 영웅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며 살았다. 모든 신화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길가메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나이 들며 친구가 죽음을 맞는다. 길가메시는 이별과 죽음, 인간의 운명에 심한 고민을 한다. 기원전 3000년경 전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죽음에 대한 것은 변함이 없다. 그로 인해 길가메시는 절망하며 ‘영원한 생명’을 찾아 방황하는 고뇌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인간이면 감당해야 하는 존재의 비극인 죽음을 바라보게 된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에게는 신상옥 감독은 영화의 대명사다. 그도 죽음을 바라보면서 <황홀한 사람>의 소설을 <겨울 이야기>로 영화와 하는 것을 본다.
이웃 친구들 간 간혹 죽음의 이야기를 한다. 개중에 어떤 사람은 재수 없이 죽음에 이야기를 하느냐 핀잔을 준다. 또 다른 사람은 죽음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다수의 사람은 후자에 손을 든다. 그러면서 감동을 주는 선배를 만나기도 한다. “우리 오늘부터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하여 삽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디고 버텨 남이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선배의 거룩한 다짐의 말이 시인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어록이다. 한 사람의 영웅이 세상을 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세상을 악마 화할 수는 있다. 과학이든 역사든 인간 세상의 진보는 조금씩 점진적으로 개선은 할 수 있다. 머무르지 않고 이성의 이름으로 그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황홀한 죽음 앞에는 진보란 없다. 이성적인 존재로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을 아는 것이 황홀한 사람으로 가까이 가는 것일 것이다. 흔히들 죽음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것은 이론이다. 죽음은 어느 날 어떻게 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준비라는 것이, 있다면 오늘이 또 오늘이 준비일 것이다. 내일은 황홀한 사람이 아니다. 선배 시인은 사진을 모두 정리하고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하였다. 선배는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사진을 유작으로 남기고 말았다. 담장이 길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네 앞에 황홀한 죽음이 담장처럼 있는 것이다.
<황홀한 사람> 소설의 어느 지점에는 “하고 싶은 것하고 사는 것은 선택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선택은 건강할 때의 말이다. 소설의 말미에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어떻게 지키며 살 수 있을까.” “어려운 숙제다.”라는 말의 고민으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