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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부재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3년 12월 06일(수) 16:42 가+가-
아프리카 어느 숲속에는 작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작은 마을의 추장은 특별한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마을의 어른으로서 숲속에 사나운 짐승이 많아 언제나 창을 손에 들고 다니며 마을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추장은 마을을 지나가다가 아이들이 표범 새끼와 놀고 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추장은 놀라 아이들에게 표범을 빼앗으려 했지만 아이들은 추장에게 표범에게 고기를 먹이지 않아 순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추장은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마을 아이들이 가지고 놀게 할 게 없어서 표범이 좋은 친구가 되었다는 점에 동의하며 고기를 먹이지 않고 키울 것을 당부했다. 아이들은 환호하며 추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고, 표범과의 즐거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아이들이 숲에서 놀던 중에 사고가 발생했다. 아이 한 명이 넘어지고 다친 것을 보고 표범이 무릎의 상처를 핥던 중 피의 맛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 순간 잠재되어 있던 표범의 본능이 깨어나면서 아이를 위협하고 공격했고, 다른 아이들도 위험에 처했다. 추장이 달려와도 이미 너무 늦어 아이들은 표범에게 찢겨 죽었다.
표범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숨어있던 본능을 드러내어 아이들을 잃게 되었다.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던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교수님, 추위가 존재합니까?” “당연히 추위가 존재하지. 자넨 추운 적이 없는가?” 교수가 말했다. 학생이 이어 말했다. “사실은, 교수님, 추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리학 법칙에 의하면, 우리가 추위라고 간주하는 것은 실상은 열의 부재입니다. 0 도는 열의 완전한 부재입니다. 그 온도에서는 모든 것이 반응할 수 없거나 쓸모 없어집니다. 추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열이 없을 때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묘사하기 위해 인간이 창조한 것입니다.”
학생은 계속했다. “교수님, 어두움이 존재합니까?” 교수가 대답했다. “물론 존재하지.” 학생이 대답했다. “다시 한번 교수님이 틀렸습니다. 어두움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두음은 사실상 빛의 부재입니다.
우리는 빛을 연구할 수 있지만 어두움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실 뉴턴의 프리즘을 이용하여 흰 불빛을 여러 색으로 나누고 각 빛깔의 다양한 파장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을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간단한 한줄기 빛으로도 어두움을 깨고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장소가 얼마나 어두운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빛의 양을 측정합니다. 이것이 옳지 않습니까? 어두음은 빛의 부재를 묘사하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마침내 학생이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악이 존재합니까?” 이제 교수는 확신하지 못한 채 대답했다. “물론이지. 이미 말한 대로야. 우리는 매일 보지 않는가? 매일 일상에서 보는 인간의 잔인함에 존재하며 세상 곳곳의 각종 범죄와 폭력에도 존재하네. 이러한 현상들을 악(惡) 이외에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에 학생이 대답했다. “교수님, 악은 존재하지 않거나 적어도 스스로 존재하진 않습니다. 악은 단순히 선의 부재입니다. 마치 어두움과 추위와 같이 선의 부재를 묘사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단어일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열이 없을 때 추위가 오고 빛이 없을 때 어두움이 오는 것과 같습니다.”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존재나 부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다. 처음에는 순한 표범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야생적인 본능이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두움은 빛의 부재인 상태인 것처럼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내면에는 종종 감추어진 본능이 존재한다.
그 본능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어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두움은 빛의 부재, 악은 선의 부재 속에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 빛과 선이 있다면 악에게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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