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에 정지용이 걸어가고 있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3년 11월 21일(화) 16:41 가+가-

강의 중, 꼭 읽어야 할 시집을 묻는다.
시집보다는 꼭 알아야 할 시인을 알려주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다. 꼭 알아야 할 시인의 기준도 모호하다. 주관적 일 수밖에 없다.
권일송 시인은 정지용(1902~1950)을 들어 1930년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시인이라 알려준다. 그래서 그를 선구자, 개척자라고 부르며 현대 시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통상 정지용 시인 자체가 그냥 한국 시문학사라고 할 만큼 우리 한국 시사, 특히 현대 시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임을 강조한다.
정지용은 경향신문(1946)의 주간과 이화여대 교수를 지냈다. 48세의 짧은 생이었다. 정지용의 짧은 생은 전쟁의 참화(6.25)가 그렇게 만들었다.
한국 시단의 3 재(材)로 불리는 서정주, 이용악, 오장환에게는 시의 스승이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을 추천하였는가 하면 윤동주, 이상 시인도 추천하였다.
이외에도 많은 시인을 추천하였다. 윤동주 시인의 시집의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서문은 정작 나오지 못했다.
지용이 해금되면서야 그 서문은 우리 눈 안에 들어오게 됐다.
흔히 민족 시인이라 하며 맑은 시인이라 하는 윤동주는 정지용의 시를 대하며 시인이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 비밀이다.
정말이지 정지용은 우리 민족 역사의 아쉬운 인물에 속한다.
혼란기에 문인 단체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시련의 시간이었다. 70여 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은 이념에 관하여 앞으로 한 걸음도 진일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지용은 1945년 8·15 후 좌파 단체인 조선 문학가 동맹의 아동문학 분과의 위원장이 되었다. 이즘 정지용 시인은 문학 활동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문학 이외의 글을 투고한 흔적이 있다. 일본을 침략자 근성을 비난할 때 ‘모모타로’(일본의 5대 동화의 하나로 복숭아에서 태어난 개, 꿩, 원숭이를 거느리고 도깨비 섬을 정벌한 이야기, 도태랑桃太郞))를 언급하면서 섬나라의 도둑 근성의 동화라고 비난 한 글도 있다.
당시 좌우의 대립이 극렬하여지자 월북을 선택한 문인들과는 달리 전향을 선택,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보도연맹(保導聯盟)은 1948년 12월에 국가보안법이 시행됨에 따라, 좌익 전향자를 보호하고 지도한다는 명문으로 결성한 단체다. 보도연맹의 입안 추진자는 오제도다. 오제도는 정지용에 가서 강요로 가입해 달라고 재촉했다.)
정지용 시인은 6·25 전쟁이 터지고 피난길에 오르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았다.
인천 상륙 작전이 끝나고 수복된 서울에서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여론은 납북이다.
월북이다. 확인되지 못했고 정지용의 작품은 정 X 용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X라는 뜻은 읽을 수 없는 시인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이다.
1988년 7·19 해금 조치를 통해 그는 만인의 시인이 되었다.
박운산은 정지용이 자진해서 월북하다가 소요산에서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불분명한 소문을 퍼트렸다. 여러 가지의 정황으로 봐서 정지용이 자진 월북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박운산의 정지용에 대한 월북 운운은 좌와 우의 치명적 의도로 보인다.
요즘으로 치면 가짜 뉴스다.
당시의 문단은 좌와 우의 고질적인 시기 질투 속에 험담이 난무하는 하나의 단면이다. 오늘의 분위기도 다르지 않다. (물론 당시처럼 질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지용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과 자료들은 그가 월북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소요산에서 폭격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증언은 북한의 감옥까지 끌려가 탈출한 계광순 전 의원(1909~1990.4.5.6 대 국회의원 역임)의 증언으로 계광순 자신은 9월 23일 탈출하였지만, 정지용은 감옥에서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증언을 하기도 했다.
여하간 정지용에 관한 설은 여러 가지로 설정, 증언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소요산에 폭격으로 사망을 정설로 보고 있다.
북한에 정지용의 셋째 아들이 살고 있다.
2000년 아들 정구인은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였다. 상봉대상자에, 아버지, 어머니, 형, 조카를 다 넣은 것이다. 결국, 큰 형 정구관은 상봉했다. 아버지 정지용의 행방은 그들에게도 의문의 물음이었다. 북으로 가다가 폭격을 당하여 사망했다는 말만 확인하였다. 유가족의 여러 정황을 보아도 정지용이 월북은 아니다. 전쟁 중 폭격으로 사망 된 것이 정설로 보인다.
정지용의 향수를 모르느니는 없다. 그가 전쟁과 분단국의 희생 문인이라는 아는 것도 학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