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낙엽이 쓸고 있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3년 11월 07일(화) 16:28 가+가-

11월 7일. 돌아가는 삼각지의 가수 배호가 스물아홉의(1971년) 나이로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삼각지 로터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삼각지 로터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는 사모하는 여인을 만나지 못한 채 삼각지 로터리를 흐느끼며 돌아가는 남자의 비련을 담았다.
배호는 1967년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의 신인상을 휩쓸었다. 애수의 젖은 저음의 바브레이션과 중절모에 검은 테 안경을 상징으로 승승장구했다.
지병인 신장염이 배호의 발목을 잡았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배호는 16세 때 삼촌이 운영하던 ‘동호 카바레’의 악단에서 잔심부름하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스물한 살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악단을 만들어서 드럼연주자 겸 가수로 활동을 했다. 이 노래가 나오기까지 배호에게 우여곡절이 많았다. 작곡가 배상태가 전차를 타고 삼각지를 지나다가 만들었지만 녹음할 가수를 찾지 못했다. 남일해 금호동을 거쳐 남진과 김호성에 퇴짜를 맞았다. 건강 때문에 쉬고 있던 배호에게 찾아갔다. 만든 지 5년 만에 빛을 봤다. 전국의 팬들은 열광했지만, 배호의 건강은 악화했다.
트로트의 문법은 배호에 의해 다시 쓰였다. 여느 가수와는 결이 달랐다. 중저음의 직선적인 목소리가 고전적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남자 저음이 최고의 장점이자 특징이다. 고음에 팬들은 주목하였다. 배호는 그렇게 당대의 최고의 록스타로 부상했다.
배호의 노래가 삼각지를 휘몰던 1960년대 시절은 산업화를 지향하던 수도 서울이 빛과 그늘이 공존했다. 시대의 거울인 대중가요는 이 같은 도시의 두 얼굴에 어김없이 대변했다. 패티킴의 ‘서울의 찬가’에도 도시의 화려한 풍경과 희망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다면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는 우수와 비애가 짙게 스며있다. 배호의 낮은 성음의 노래는 도시의 어두운 그림자에도 세련된 도시적 감수성이 녹아 있다.
배호가 떠난 지 51년이 되었다. 그를 추모하는 팬카페는 전국적인 규모다. 1만여 명이 11월 7일이면 배호를 그리는 행사를 한다.
경남 가수협회(사)가 주관하고 배호 추모기념사업회와 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가 후원하는 51주기 추모식이 거대하게 열리는 것은 배호의 노래는 지금도 가을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배호의 육신은 고적한 가을 낙엽으로 갔지만 애절한 영혼의 울부짖음은 쉽게 잊힐 수 없다. 배호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적이고 감미로운 전설의 가수임이 분명하다.
천재 배호 가수가 떠난 11월은 괴담의 달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가수 유재하(1987년)와 김현식(1990년)이 각각 요절했다. 이후에는 대중 음악계에 11월의 슬픈 괴담이 망령처럼 떠돌았다. 1995년 그룹 듀스의 김성재와 2010년 1인 밴드 달빛요정 역전 만루 홈런의 이진원이 세상을 등졌을 때도 팬들은 충격이 컸다.
7일, 하루 앞둔 삼각지에는 종일 비바람이 불었다. 배호의 낙엽은 사라진 삼각지를 휘돌았다. 삼각지 역에는 기타를 든 배호의 동상이 있다. 팬들은 꽃다발을 들고 배호의 동상을 찾았다. 남기고 싶지 않다면서도 배호 동상에 손을 잡고 사진을 남기고 있다.
사랑의 본질은 이별이라지만 천재 가수를 아까운 청춘에 보낸 팬들은 아프기만 하다. 삼각지에서 만난 팬은 슬픔이자 허무하다. 사랑이 있기에 이별이 있는 게 아니다. 이별이 있기에 사랑이 있는 것이다.
이별을 감추고 있거나 잉태하고 있기에 사랑은 더 뜨겁다. 그리고 아픈 것이다. 이별 후는 추억과 회한의 상처뿐이다.
11월의 낙엽은 그렇게 배호의 노래에서 추억으로 불리고 있다. 많은 시인과 가수가 낙엽을 보며 사랑의 운명을, 사랑의 끝자락을, 사랑의 추억을 읊었다.
봄에는 사랑의 예감을, 여름엔 사랑의 환희를 노래한다. 가을에는 그 사랑의 완성을 말한 노래는 지금까지 없다. 그래서 가을은 실연의 르네상스라고 한다.
청마 유치환은 한 줄 시에서“너는 추억을 이렇게 쓸고 있다” 라 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에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가 되어서/ 알아보리라. 김소월의 시 부모다.
우리는 언젠가는 낙엽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