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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절실한 하나의 몸짓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3년 10월 24일(화) 16:35 가+가-
가을이면 여지없이 시몬은 또다시 우릴 부른다.
“시몬! 나뭇잎이 흩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작은 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아하니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의 빛깔은 부드럽고/ 그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덧없이 버려져/ 땅 위에 있다…….”
D.H 로렌스는 낙엽과 가을을 하나의 장례식에 비유한다. 영원이란 지상에는 없다. 찬란한 여름조차도 조락(凋落)을 느끼기를 원한다. 이미 떠나버린 이무영(李無影, 1908~1960) 소설가는 가을을 애상적으로만 바라보는 무골(無骨)과 자학(自虐)을 꾸짖기도 한다.
나무가 가을을 맞아 잎을 떨구는 것은 새로운 의상을 마련하기 위한 현상일 뿐 생명이 다했음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수목(樹木)은 다가올 봄에 대비하는 축제의 약진 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가을은 생에 절망해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희망도 싹트지 못한다. 인생을 절실한 몸짓으로 울고 눈물에 묻은 빵조각을 먹어본 사람이 아니고 서는 낙엽의 의민들 쉽게 터득될 까닭이 없다. 나뭇잎이 거부의 몸짓으로 떨어진다고 노래했던 R.M 릴케. 그는 곳곳에 낙하(落下)를 보아 냈다. 열렬한 기도와 찬미로 일관해서 가을을 살았던 그는 어느 날 장미의 가시에 찔려 죽음이 손짓하는 곳으로 갔다.
어느덧 가을도 개회(開會)를 선언하였다. 우리나라야 춘하추동 사계가 분명 하지만 옛 영국인은 일 년을 여름 겨울의 두 계절로 나누었다.
유럽에서 ‘가을(Autumn)’이라는 말이 생긴 것도 17세기 <초서>의 시대부터였다.
그 후부터 가을은 수확의 계절, 조락의 계절로 분류되어 온 것으로 여겨진다.
기쁨의 수확을 생각하면 보람찬 계절이다. 인생과 예술과 추억들이 시나브로 영혼의 깊디깊은 안으로 파고드는 계절이다.
청춘의 오뇌(懊惱)들이 무한으로 확대되는 시간이다. 최희양 시인은 가을이 오면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노래를 꼭 들려주고 싶다 한다. “너를 보내는 들판에 마른 바람이 슬프고/ 내가 돌아선 하늘에 살빛 낮달이 슬퍼라/ 오래도록 잊었던 눈물이 솟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여/……./ 사람아 사람아 내 하나의 사람아/ 이 늦은 참회를 아는지.”
백창우 시인이 가사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다. 누구나 지독한 외로움이 있다.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는 가을을 맞는 우리에게 가슴 한쪽 편을 흔드는 노래임이 분명하다. 1984년이다. 시인 백창우가 노래를 만들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버려두었다. 지켜본 작사가 지명길은 백창우의 곡과 가사가 좋았다. 지명길은 연예인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임희숙에게 이 노래를 소개했다. 모르긴 하여도 가을의 시간이었을 것.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를 줄 노래를 찾던 임희숙은 구르몽의 시를 연상케 하는 노랫말과 멜로디에 단번에 매료됐다. 가창력이라면 자신감이 있는 임희숙은 대마초 파동(1975년)으로 암흑기를 보내던 터다. 대마초를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누명을 쓰고도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던 시절이었다. 이혼과 음독자살로 만신창이가 됐던 그는 1980년 활동 금지가 풀리면서 재기했다. 그러고 보면 80년의 봄은 희망의 봄이기도 했다. 하지만 MBC 예능 프로 <명랑운동회>에 출연했다가 허리를 심하게 다쳐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구원의 노래’처럼 이 노래가 그의 재기를 도왔다. 노래를 만든 백창우는 절대로 외로운 시절의 사나이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서적 외판원을 하면서 외로워서 만든 노래다. 파란의 암흑기를 보낸 중견 여가수가 불렀다. 노래는 팬들이 먼저 알아봤다.
삶은 이렇게 희미한 낮달처럼 찾아온다.
팬들은 임희숙의 허스키한 음색과 노랫말. 실로 그의 솔(soul)이 심금을 흔들었다.
이 노래로 임희숙은 시련의 시간을 말끔하게 씻어냈다.
누가 가을을 허무의 시간이라 하는가.
양애경 시인은 가을은 계절학(季節學)이라 하기도 한다. 나목은 죽어서 별이 되어서 좋다. 강물이 없어도 물은 흐르는 역설의 시간이다. 산도 강도 가을이면 외로워서 피 울음을 운다. 시인은 이를 두고 붉은 휘파람을 분다 한다. 가을에는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잎새에 이는 바람도 철학자와 손목을 잡고 걷는다. 낙엽은 찬비에 젖어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떠오르는 붉은 해의 소망을 알기 때문이다. 가을엔 나를 두고 떠난 그대를 미워하지 말자. 분명 누군가 손 잡아줄 이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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