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매는 감사 할 뿐이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3년 10월 17일(화) 16:38 가+가-

나뭇잎들이 상기되어 붉어지는 시간이다. 기르는 새장을 정원의 창가에 내놓는다. 간혹 비둘기와 낮 선 새들이 새장에 갇힌 십자매를 유심히 살피다가 돌아가곤 한다. 십자매를 기르는 형은 새장 안의 십자매가 측은 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조경학자인 형은 그 광경을 여러 날 동안 지켜보다가 결심한다. 십자매에게 새장의 문을 열어주기로 한다. 밖에 사는 새들과 마주친 십자매가 새장 안의 자신을 한탄하거나 밖의 새들을 부러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형은 날이 맑은 날을 택일하여 십자매에게 자유를 주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새장의 문을 열어주었다.
문을 열어주면 십자매는 하늘을 활활 날아가게 될 거라는 비상의 꿈이 들어있다.
새장의 문이 열렸는데 십자매는 모이를 먹기만 할 뿐 열린 문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형은 새가 문이 열린 것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종일 문을 열어 놓는다. 여전히 십자매는 새장 밖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답답한 형은 십자매의 모이 그릇을 새장 밖으로 내놓았다.
십자매는 모이를 먹고는 곧장 새장 안으로 들어갔다. 형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경우를 두고 반전이라 하는가.
십자매는 밖의 정원을 자유로운 세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형은 여러 궁리 끝에 모이를 새장에서 1미터쯤 멀리 내놓았다.
새는 1m 밖의 모이를 먹으러 나오지 않았다. 종일 굶고 있다. 멀어진 모이 그릇의 환경이 두려운 것으로 보인다. 다시 새장에서 50센티 정도 떨어진 곳에 모이 그릇을 놓아 주었다. 그제 서야 십자매는 모이를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만족스럽게 배를 채운 십자매는 새장으로 곧장 날아 들어갔다. 형은 십자매가 정원에서 놀다가 다시 새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상했으나 그것은 한낮 이상이 되고 말았다.
십자매와 대화를 할 수 없다. 그러기에 십자매의 심정을 이해할 수도 없다. 다만 십자매는 새장에 사는 것이 감사의 생활로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멀리서 보니 십자매 새장에 열린 문으로, 밖에 사는 새들이 모이를 먹으려, 들어갔다. 그리고 십자매를 쪼거나 괴롭히기도 했다.
형은 자유로운 세상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십자매는 십자매대로 그가 어떤 것이 감사의 생활인 것을 아는 것으로 보인다.
감사라는 것은 그저 조건 없이 주는 것 만이 감사가 아니다. 감사에도 공감과 진실, 환경이 통할 때 감사의 작동이 된다.
형은 십자매를 기르고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었다. 십자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감사의 모습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감사는 어디서 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시대를 상실의 시대라 한다. 모두가 방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새장 안에도 행복과 감사가 있다. 우리는 감사의 생활을 모르며 살고 있다.
형은 십자매를 통하여 감사에도 반사가 있다는 경험을 한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듯 감사는 거울에 비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의 진실이 아무리 전달하고 싶어도 감동으로 비추지 않으면 무의미가 된다.
그러는 동안 새장 안에서 감사를 누리는 십자매가 알을 낳고 부화를 하였다. 형은 십자매 가족이 늘어나는 광경이 감탄 스럽다. 좋아한다. 세상은 자그마한 새장 안의 일들이 감탄도 주고 감사의 의미를 알게 한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형은 십자매 가족을 그림을 그려서 새장 건너편에 걸어 주었다. 십자매는 먹이를 먹다가도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유심히 본다. 형은 십자매가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다.
식물학자이며 꽃꽂이 장식을 하는 형. 십자매 하나를 놓고도 감사하는 모습이 감탄 스럽다. 오늘도 새장 안에서는 감사를 쪼아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