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70주년에 22 참전국이 함께 바친 찬양 “Amazing Grace!”
이창용 前 순천대학교 외래교수
작성 : 2023년 07월 31일(월) 16:42 가+가-

우리나라는 5천 년 역사 속에서 900여 회 외침을 받아왔다. 그 중에서도 6·25 전쟁은 동족 간에 있었던 가장 참담하고도 비극적 전쟁이다. 휴전협정으로 포성은 멈췄지만 73년이 지난 지금도 남한과 북한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니 여전히 전쟁 중이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오전 4시경에 탱크 242대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었다.
당시 대한민국의 군 체계는 군 시설이 매우 낙후되어 있었기에 많은 인력을 수용할 공간도 없었다. 그래서 토요일 오전이 되면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을 제외한 전원이 외박을 나가 일요일 오후에 들어왔다. 즉, 북한군이 38선을 넘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오전 4시경에 국군 병사들의 대부분은 각자의 집에서 취침 중이었다.
한편 이 날 브라질에서는 월드컵 개막전이 열렸는데, 타이밍도 절묘해서 개막전이 벌어지는 딱 그 시각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북한군 탱크가 38선 철책을 넘어오고 있었으니… 무방비상태에서 대한민국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게 된다.
이때 UN군이 참전해 주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지도는 붉은색으로 지금까지 물들여져 있을 것이며, 공산 독재정권에 신음하고 있을 것이다.
유엔군이 세계 분쟁지역에 연합군대를 파병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며 후에도 없었다. 그렇게 미국(1,789,000명)과 영국(56,000명)을 포함한 16개국이 1,938,330명의 전투병을 파병해 주었고, 6개국이 의료지원을, 38개국이 물자지원을 해줌으로써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유엔군들은 우리를 위해 싸우다 40,896명이 전사하였고, 실종자까지 포함해 안타깝게도 44,784명의 군인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였다. 물론 한국군도 126만 명이 참전해 15 만여 명이 전사했으며, 710만 명 정도가 부상을 입었고, 아직도 13만여 명이 실종 상태에 있다.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지나고 있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서 UN의 이름으로 한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국 젊은이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은 한 사람 한 사람들을 우리 국민 가슴에 영원히 담는 것이다.
해방된 지 몇 년도 되지 않은 1950년대에 우리나라를 아는 나라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그런 알지도 못했던 나라를 구하기 위해 20을 갓 넘긴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친 그분들은 진정한 우리의 영웅들이다.
정전 당시만 해도 맥아더 장군은 “이 나라가 재건하는 데에는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70년 전 가장 가난했던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가장 짧은 시간에 세계가 깜짝 놀랄 경제성장을 통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으며, 음악과 영화를 통한 한류 붐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는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변모한 것이다.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부산일대만 남은 풍전등화 같은 처지에 있었던 우리 대한민국에 UN에서 어떻게 파병이라는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많은 기독인들은 하늘의 도움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안전보장 이사회에 소련의 불참이라 던 지, 열여섯 나라가 전투병을 보냈던 일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뒷동산 여우가 돌봐도 돌봐야 무슨 일이 된다.’고 하는데, 한 나라의 존망이 달려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신의 가호가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지 않았더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참여한 7월 27일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는 국적이 다른 22개 유엔군 참전 용사들이 모였지만, 음악으로 하나 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이날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참전 용사와 유엔 합창단이 함께 부른 ‘어메이징 아리랑’이었다. 무대 영상에선 각국 참전 용사들이 6·25전쟁 때 불렀던 아리랑을 추억하며 한 소절씩 부르는 모습이 나왔다.
이후 미군으로 참전한 패트릭 핀씨와 영국의 콜린 태커리 씨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왔다.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최고령 우승한 태커리 씨는 “자유롭고 놀라운 성장을 한 대한민국의 모습은 70년 전 저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며 핀씨와 함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선창 했다.
이어 가수 라포엠, 유엔 평화소년소녀 합창단 등으로 구성된 연합합창단 100명이 무대에 올라와 국방부 군악대대와 미 8군 밴드의 연주에 맞춰 미국의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관중석의 참전 용사들도 어느덧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연주는 다시 아리랑으로 이어졌고, 한국어와 영어가 연결된 ‘어메이징 아리랑’ 무대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리랑은 전장에서 뿐 아니라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 조인식을 마치고 귀환하던 유엔대표단이 사열할 때도 연주된 곡이다. 어린이 합창단원은 영어로 힘차게 “감사합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쳤다. 우리 국민이 답변할 차례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놀라운 은혜’에 끊임없는 보은을 하겠습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