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끝을 향해 영혼의 여행을 떠난 선생님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7월 25일(화) 16:32 가+가-

“시간이 지나 바람이 잦아들고, 눈이 내리는 곳에는 꽃이 피었다. 별이 빛난 곳에는 태양이 나무숲 위로, 떠올랐다.”
서이초등학교에서 2년 차 ㄱ 새내기 교사의 출근길 되뇌는 루이즈 글릭(Louise Elisabeth Gluck, 1943~, 노벨문학상 2022년)의 시 구절이다. 교사는 신실하고 고결한 밤을 노래한 루이즈 시인의 자전적 시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새내기 교사에게 마음에 없는 본능이 나오기 시작한다.
교사는 교실에 들어서려면 복도의 끝이 보인다. 어느 날이다.
담당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복도의 끝으로 처벅처벅 걸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교실이 도착의 목표가 아니었던가?. 밖으로 다시 걸어나가는 것이 목표는 아니지 않는가. 분명하다. 나의 출근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교실이 제 자리다. 왜 나의 발끝은 교실이 아니라 건너편 복도로 다시 나가고 마는 것인가!.
사람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대로 산다는 말이 맞는 말인가!. 교사의 마음이 복잡해진다.
스스로 마법도 걸어본다. 너는 교육이 뭔지 알아?. 너는 교사가 되면서 정말 기쁘고 행복했어?. 예상치 못하는 주고받는 질문이 마음 안의 자신에게 쏟아진다.
대학 생활에서 교수가 들려주던 교육관에 대하여 곱씹어 보기도 한다.
“교육도 결국 감정의 결과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정열은 지나가 버린다지만, 교육은 지속적이고 열정이 솟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의미를 찾아서 저들에게 전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사는 사라져도 학생은 다시 교사가 된다. 그래서 교사가 없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선생이 된 나는 교수의 말씀에 분명 밑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때때로 비밀과 무형의 폭력이 횡횡하고 있다.
내가 공부한 장소와 교실도 강남이었다.
새내기 교사가 햄버거를 먹으려 동료들과 아이들의 미래 교육을 논하던 장소도 강남이다. 가끔은 맥주 한잔을 하며 꿈이 있는 교육을 논하던 장소도 분명 강남이다. 그러나 학부모의 강남은 다른 강남인가?. 점심에 탕수육을 주었다. 저녁 무렵 학부형의 전화다. “우리 아이는 찍어서 먹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왜 부어서 먹는 음식이 나왔냐”라는 항의다.
자신의 본마음을 타인에게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모르는 부형들이 사는 곳이 강남인가?. 자신에 묻는, 질문이 깊어질수록 생각의 정리는 요원한 숙제가 된다. 나는 다르게 살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과 내 인생을 바꾸고 싶지도 않다. 고통의 한 가운데는 아무리 심한 고통이 올지라도 나는 교사다.
이렇게 서이초등학교 교사는 복잡한 심경으로 초임의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교사의 죽음은 교실이다. 그는 교실의 신성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한 그가 교실에서 24살의 꽃다운 생을 마감하였다.
교사는 장소의 선택이 최선의 저항, 항거였을 것이다.
오늘 밤도 은하계의 별들은 뜬다. 그 별 중에는 교사의 별이 있을까?. 분명 교사의 별은 은하계에 도착했을 것이다. 24살, 선생의 죽음은 선생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를 죽음으로 몬 것은 이기주의자들의 무자비한 집단 이성이다. 그들, 집단 이성은 자신들을 향하여 ‘완성형’이라 생각한다. 내가 판단하는 것은 옳다. 타인의 거슬린 행동은 나만이, 지적할 권리가 있다.
완성형인 내 자식도 더불어 완성형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 때부터인가 같은 서울 아래서도 지역적인 문제가 우월적 갈등으로 떠오른다. 물론, 지역의 특성이 교사를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는 것은 또 다른 빌미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이 또 다른 갈등의 부축 임일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교사의 죽음은 죽은 교권의 문제가 실체일 수도 있다. 그에 앞서 집단 이기주 자들의 완성형에서 오는 착각도 무시할 수는 없다.
국민은 선생의 죽음을 대하며 분노한다.
분명 선생은 한 방울의 물이 비구름이 된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자신의 한 방울이 수많은 학생이라는 비구름이 되어 지상을 적시는 것도 알았다.
그 비구름은 지구의 씨앗을 틔우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폐허 같은 세상을 견디고 참을 수 없어 떠나간 선생에게 뒤늦은 꽃을 놓는 저들은 또 무엇인가!. 장대비가 교실의, 창문을 내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