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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우드 동네서점에서 만난 버지니아 울프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7월 11일(화) 16:34 가+가-
서점이란 위대한 사람의 생각과 사상의 공간이다. 영국에 한 달여 여행 중에 런던 헤이우드 힐(London G.Heywood Hill) 서점을 들러 보게 되었다. 헤이우드 서점은 버킹엄 궁전 근처의 한적한 주택가다.
차선이 구분되지 않은 작은 도로 앞으로 고작 60㎡쯤 될까 말까 한 작은 서점이다. 옆으로는 약국과 작은 카페, 그리고 아파트 단지가 있다. 지역의 주민을 상대로 한 동네서점임이 분명하다.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천 권의 책이 고유의 냄새를 풍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서점이다.
하지만 런던에서 책 좀 본다는 식자층 사이에서는 ’책의 성지’로 불린다. 헤이우드 힐은 1936년 서점 주인 조지 헤이우드 힐의 이름을 따서 세운 서점이다. 서점이 들어서며 런던의 지식인들이 모여 책담(冊談)을 나누고 책을 함께 읽는 중심지가 되면서 성황을 이루었다. 이 서점의 단골에는 윈스턴 처칠(영국 전 총리)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단골손님의 명단에 있었다. 동네서점으로 규모는 작지만, 세계 60여 개국에 판매망을 구축하고 있다.
연 100만 파운드(약 17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 한국의 동네서점 평균 매출이 연 1억 원 내외인 것을 고려하면 무려 17배가량의 매출이다.
찰스 디킨스, 윌리엄 서머싯 몸, 엘리자베스 여왕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문화와 정신이 곳곳에 배어있는 헤이우드 힐은 오늘날 전통에 뿌리박은 유럽의 몇 안 되는 명성의 서점이다. 외국의 서점에서는 한국의 서점에서처럼 익숙하게 책장을 넘기기보다는 장정(裝幀) 보기를 즐긴다고 하는 것이 옮을 것이다. 표지만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구매 한 책도 있다. 책을 펴내는 데에 도움이 되거나 편집디자인 응용에 참고가 된다.
매장을 지나다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의 저서를 집중으로 모아둔 서가를 만났다. 외국에 능통한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댈러웨이 부인>을 뽑아 들었다. 가볍게 접근할 내용은 아니지만, 아이 쇼핑의 대가를 치른 셈으로 구매하기로 했다. 노란 양장표지에 유화로 된 여성의 반 명함판 그림이 오른쪽 중간에 있다. 그림 안의 여자는 모자를 썼고 찻잔인지 다과 그릇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그림의 명암이 어둡다. 여행에 돌아와서 서툰 실력으로 <댈러웨이 부인>의 원서를 보았으나 접는 시간은 이른 봄, 나비 날갯짓보다 더 빨랐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번역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것이 속 편한 것이라 판단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저서들은 한국의 독자층이 폭넓은 편이다. 박인환 시인이 작시한 <목마와 숙녀>에 나오는 버지니아 울프 이름이 나오는 가사 덕일 수도 있다. 노래가 나오기 전에는 버지니아 울프는 국내 독자층에는 생소한 편이었다. <댈러웨이 부인> 소설의 첫 문장은 “댈러웨이 부인은 꽃은 자신이 직접 사겠다고 말한다.”로 시작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1차 세계대전의 세대다. 소설의 내용은 1923년 6월 하루 동안 벌어진 이야기다. 첫 줄이 말하듯 파티를 준비하면서 온종일 자신의 삶과 과거, 현재를 돌아본다. 소설은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참전 용사를 통하여 전쟁이 가져오는 심리적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울프는 사회 계급의 주제도 심도 있게 탐구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모더니스트 문학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인간관계로 이어지는 허구, 또는 실제 사건의 연속을 통하여 당시의 영국 사회의 문화적 맥락을 묘사한다.
시적 언어와 내면의 독백은 버지니아 울프 문체의 독창적이라는 평이다. 울프의 글솜씨는 당대에는 혁명적이라는 평단의 평가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20세기의 문학적 지형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해석도 한다.
소설을 대하면서 팡세의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떠오르곤 하였다. 클러리서는 파티를 준비하면서 남편 피터와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나아가서 공허함에 빠진다. 이 대목은 마치 버지니아 울프 작가 스스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꽃가게 주인과 잠시 눈이 맞아서 호감을 느낀다. 두 사람은 각자 가정이 있다. 사회적 지위가 두 사람에게 만남의 지속은 어렵다.
결국,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진다. 클러리서는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어릴 적 친구였던 피터 윌시에게 온 편지에 답장을 쓰며 잊고 있었던 옛 추억으로 들어간다. 소설의 매력은 반전이다. 클러리서는 추억의 남자, 피터윌시에게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둘은 위로하며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다. 현실은 불가능할 수 있지만, 소설은 늘 가능한 사랑 방식이다. <댈러웨이 부인>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사랑과 결혼은 영원히 지속할 열정은 없다. 영원히 안주할 행복도 없다“는 톨스토이의 말(안나 카레니나 소설에서)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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