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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의 잘츠부르크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7월 04일(화) 16:36 가+가-
카라얀의(Herbert Karajan, 1908~1989) 지휘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본다는 것은 20세기의 행운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을 고르라면 카라얀의 지휘하는 모습이다. 유럽의 골목, 사진 패널을 판매하는 가게를 지나면 카라얀의 지휘 모습이 맨 앞에 걸린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지휘하는 손동작만 보아도 클래식 연주가 생생하게 들린 듯하다.
20세기 음악사를 대표하는 카라얀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 가운데 한 명이다.
세계 최고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35년간 종신 지휘자로 명성을 날렸다. 클래식 전설의 지휘를 직접 보고 싶은 것이 평소 소원이었다. 그의 압도적인 지휘의 모습을 현장에서 보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 일인가. 방식 독일 명장은 독일에서 13년을 유학을 마치며 귀국 전 마무리 시간표를 만들었다.
그 중, 하나가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닉 방문이었다. 일정에 맞추어 필하모닉을 방문하였다. 방식 명장은 입장과 함께 카라얀을 눈앞에 보게 된 행운을 얻었다.
카라얀은 입장하는 문 앞에서 음반을 사인하여 팔고, 있는 중이 아닌가. 방식 명장은 발걸음을 멈추고 음반을 매입, 사인을 받았다. 그 여운을 느끼려 사인하는 카라얀을 보고 있었다. 카라얀은 지휘 5분 전까지 사인을 하였다. 세계적인 지휘자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지휘자는 무대 오르기 5분 전까지 음반 판매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방식 명장은 카라얀의 경영 태도를 머리에 입력하였다. 지휘에 앞서 경영이 먼저라는 것이다. 음반 판매수입이 없다면 카라얀에게는 필하모닉도 없다. 방식 명장은 카라얀의 지휘를 보는 것도 중요하였지만 카라얀의 경영철학을 단숨에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고국에 돌아와 무엇을 하여도 카라얀의 5분 전 음반 판매를 염두에 두었다. (마음이 꽃이 되어 산다, 방식 저서)
세계 3대 음악 축제가 열리는 카라얀의 고향은 오스트리아 찰츠 브루크다. 이곳은 모차르트 고향이기도 하다. 카라얀의 가문은 그리스 출신이며 부친은 잘츠부르크에서 의사였다. 아버지는 취미로 클라리넷을 연주하기도 했다. 예능의 유전인자는 무시할 수 없다. 카라얀의 어린 시절 이름은 헤리베르트 리터 폰 카라얀이었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국이 되면서 제정(祭政)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선다. 카라얀의 성 앞에는 von도 공식적으로는 호적에서 사라졌다. 한국의 일제 강점기와 다르지 않다. 1984년 카라얀이 한국에 왔을 때는 카라얀의 여권에는 Herbert Karajan이라고 기재되었다 한다.
카라얀이 성 앞에 von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예술가로서 일종의 예명으로 사용된 것이다.
카라얀이 음악을 시작한 것은 형 볼프강 폰 카라얀과의 경쟁심도 작용하였다.
카라얀은 사진의 모습과는 다르게 몸집이 큰 편이 아니다. 덩치가 큰 형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피아노를 시작한 것도 그런 경쟁심에서다. 카라얀은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에서 공부했지만, 손가락의 기능상 이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카라얀은 빈 공대에서 수학했으나 결국 공대를 그만두고 빈 음대에 들어갔다. 손가락에 오는 건초염은 피아노 연주에 한계를 느끼고 지휘로 방향을 틀었다. 여행에서 수많은 인물 중에서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인상 깊은 일이다.
피곤한 여행에서 연주회를 간다는 것도 정성이 아닐 수 없다. 일행 중, 임길중 시인은 카라얀의 지휘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면 20세기의 시민이 아니라는 말도 한다.
카라얀의 연주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가장 많은 클래식 음반 판매의 지휘자다.
약 2억 장 정도의 음반이 판매되었다.
이 같은 기록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 평론가의 해석이다. 세기의 지휘자를 맞닥뜨리는 여행은 분명, 커다란 기록의 봉지를 만든 것이다. 어느 시인은 길을 잃어본 사람이 진정한 여행자라는 역설의 표현도 한다. 여행에서 세기의 예술가를 만나는 기쁨도 크다.
지휘계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카라얀이 운명하였다는 뉴스를 접한 날, 필하모닉 기념품 매점에서 구해온 카라얀 사진 패널의 먼저를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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