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최창일 시인·이미지 평론가·<시화무> 저자
작성 : 2023년 06월 13일(화) 16:39 가+가-

종로 네거리 보신각 앞에는 종로타워가 있다. 최상부가 뻥 뚫린 독특한 공간을 보인다. 사람들은 뚫린 공간에 상상을 갖는다. 상상의 공간은 늘 허구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탄생시킨다. 보신각 근처에는 조선을 지킨 용이 살았다 한다.
그 전설의 용이 종로타워를 통하여 일 년에 한 번씩 승천한다.
물론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뚫린 공간에 대하여 설명이 없기에 전설은 살아서 승천하게 한다.
현대사옥이 있는 익선동을 지나면 공간(空間) 사옥이 등나무와 함께 고풍이다. 설계의 신이라 불리는, 김수근이 설계했다.
구 공간 사옥과 신관 사옥 사이에 낀 한옥은 공간의 묘미를 보여준다.
서울의 뒤안길을 느끼는 한 묘미다.
공간은 예술이다. 시간의 연속성과 변화에 의존하는 공간 예술이다. 시와 음악, 공간의 회화는 윤곽, 부피, 크기, 모양이 나타내는 공간적인 관계의 배합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공간이란 미학적으로 만족을 주는 동시에 극적인 상황, 심리상태를 그리는 주체적인 것이다. 공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여행의 장르가 있다. 여행이란 감성의 공간을 채우려는 추구다.
여행은 스스로에 자기 자신을 다시 끌고 가는 고행이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의사소통을 하기도 한다.
말은 잘 안 통하기 때문에 수많은 언어 대체로 소통하는 재미도 얻는다. 여행에서 만나는 것에는 차이와 차별을 낳는다고 하지만 ‘차이’를 통하여 자신의 회복 기회도 얻는다.
사람의 성격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내 안의 공간에 대하여 여백의 시간이 없어서라는 경우도 있다. 내 일상의 중력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하다 보면, 내 안의 성격도 일상의 잔여물도 보내게 된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소한 풍경에서도 북한산 높이와 맞먹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꺼내면, 다른 시간 속의 공간을 만나는 듯 경이롭고 새삼스러움을 경험한다.
사실 여행이 한 숟가락이라면 내 공간의 필요한 요소들을 수만 톤을 채우게 된다.
언제나 여행자인 새들은 날았던 곳은 두 번은 날지 않는다. 여행에서 순간의 시간을 놓치면 영원히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마치 새의 날갯짓이 순간에 변화를 가지는 것과 같다.
새에게서 여행을 배운다. 새들은 짐이 없다. 욕심 사납게 꾸리지 않고 그저 맨몸으로 자유롭게 오르는 새들이다.
떠날 수 없다면 떠날 궁리라도 하는 것이 좋다. 평소의 나로부터 있는 힘을 다하여 힘껏 탈주하여 마침내 이전과 다른 새로운 나 자신에게고 더 멋지게 돌아오는 힘이다. 그 모든 것은 공간의 감성을 채우는 매력이다.
세상에 모든 아픔과 사랑에도 공간의 기원이 있다. 기쁘게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진리다.
여행에서 신기한 것은 머나먼 이국의 여행지에서 책을 펼치는 경우를 본다. 남녀노소 누구나 낮 선 곳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매력적이고 신비로워 보인다.
그것은 책 읽기를 통하여 나의 은밀한 공간을 채우고 만드는 기회를 만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멘토라는 말은, 의지하고 내가 처리하지 못한 일을 상의(논의)하는 경우다. 여행은 전적으로 내가 멘토가 되는 시간이다.
마주치는 것에 결정하고 다른 사물에 느끼고 배우는 것이 여행이다. 스스로 포기하고 싶은 것도 인정하고 이것들은 치유로 연결한다. 감정을 억제하는 힘이 심히 결핍된 자들은 진정한 해방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순간에 상처를 은밀하게 즐길 정도가 된다.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을 제어하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스스로 멈출 줄 아는 것이다.
시간의 공간이 생기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그에 따라 스스로 깨닫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순례길을 다녀온 자는 스스로 석사나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거와 같다고 해주고 싶다. 그만한 내면의 공간을 만들었다.
공간은 잃어버린 공간, 혹은 채워지기 위한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다.
많은 회화와 예술은 공간 안에 존재하는 변화를 꺼내려는 동작이다.